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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약을 발명한 중국은 왜 총기류까지는 발전시키지 못했을까요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과거 임진왜란 이전 부터 조선에서도 화승총(조총)에 대해서 알고 있었으며 이를 분석한 내용도 있습니다. 하지만 화승총의 경우 비가 오거나, 격발 이후 재장전 하는데 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단점이 있다라고 분석했고, 당시 사용되던 화살이 훨씬 빠르게 재장전이 가능하기에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라는 생각에 조선에서는 화승총을 쉽게 생각하였죠.그러한 면에서 보면 중국 또한 화약을 발명하여 여러 무기를 개발했지만 사실 강력한 활, 쇠뇌 등이 있었기에 만들기도 어려우며, 다루기도 힘든 총류의 개발은 의미가 없었지만 유럽은 두꺼운 갑옷을 뚫을 수 있는 강력한 총기류가 필요했기에 더 발전을 시킬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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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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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왕비에 나와있는 투후 김일제는 신라김씨의 시조인가요?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사실 역사스페셜에서도 나오지만 현재 투우 김일제를 인정한다면 경주 김씨 입장에서 자신들이 왕실의 후손이라 생각했는데 오랑캐의 후손이라는 말을 듣게 되니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며 펄쩍 뛰는 것이죠. 또 한편으로는 삼국을 통일했는 신라가 중국 북방 오랑캐 후손이라면 대하민국의 역사에 대한 자주성이나 독립성이 흔들릴 수 있으니 방송 이후 더이상의 이야기는 나오지 않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단일민족이라는 자부심이 있는 대한민국 역사에서는 인정 받기 어려운 역사적인 내용이니 말이죠. 역사스페셜에서 다룬 내용을 보면 충분히 흉노족의 영향을 받았으며 출토되는 유물들 또한 유목민들의 유물들이 많은데 이를 북방 흉노족과 연결시키려 하지 않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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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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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제국이 멸망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로마제국은 과거의 찬란한 영광을 지니고 있었지만 언제나 영원한 것은 없기에 훌륭한 재상, 황제가 있던 시기에서 후기로 갈 수록 황제의 권위는 약화되어 수시로 황제가 바뀌었고, 중앙집권화가 약화되자 지방 관리가 부패하고 가장 장점이었던 군사력이 약화되죠. 그러면서 게르만족 같은 이민족들의 침입이 버거워지면서 동서로마로 분할하면서 가뜩이나 약했던 서로마는 멸망당하고 방어에 유리했던 동로마는 그래도 오랜 세월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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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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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죽우면? 사후세계가 있나요?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사후세계는 없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사후세계라는 것이 없다라면 현실 세계에서 착한 일을 하거나 할 이유가 사라져 질서가 혼란해질 수 있었다고 봅니다. 그래서 과거에는 종교에서 사후세계를 통해 또 다른 질서를 만들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연스레 사람들은 사후세계를 믿고 현실 세계에서 덕을 쌓고, 다른 사람을 도우면 사후에 좋은 삶이 또 기다리고 있음을 믿게 되는 것이죠. 그러므로 사실 사후세계는 실존하기 보다는 사람들에게 현실 세계에 대한 조금은 불행하더라도 사후에는 행복해질 수 있다라는 희망도 품고서 만들어진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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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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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가 고구려 옛영토에 세워진게 무슨 의미를 가지는거가요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국가가 건국 될 때 어떤 지역을 거점으로 만들어진 것인지가 중요한데요. 삼국시대 이후에도 후백제, 후고구려가 각 지역에 존재했던 국가의 뒤를 이었다는 정통성을 기반으로 세워졌습니다. 그런 것과 유사하게 고구려가 활발하게 영토를 확장했던 만주지역에 고구려 유민이 지배층이 되어 건국된 발해가 우리 역사에서 남북국 시대를 형성했다는 것에 의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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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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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는 총을 어떻게 준비할수가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안중근의사가 생존하셨고, 끝내려 노력하셨던 일제강점기는 지금처럼 총기 규제가 있거나 지켜지는 그런 시대가 아니었죠. 특히나 해외에서 무기를 구매하기도,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빼앗기도 가능했죠. 다만, 무기가 충분하지 못했었던 독립군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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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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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학으로 불리는 서양의 문물과 천주교는 조선 땅에 어느 시기부터 들어오게 되나요?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조선에서 천주교의 역사는 기존에는 서학이라는 학문으로서 전파되었고, 공식적으로 마테오 리치라는 프랑스 선교사가 1784년에 전파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서학을 공부하면서 점차 확대 되어 신도수가 증대 되었으나 천주교 자체가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에게는 위협이 되는 학문이자 종교였죠. 그리하여 신유/기해/병인박해로 이어지며 천주교에 대한 탄압이 이어졌으나 결국 1886년 프랑스와 수교가 이루어지면서 천주교에 대한 박해가 종료됩니다. 사실 종료하지 않을 수 없는 힘이 없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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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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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언제부터 조총을 본격적으로 사용했나요?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조선에도 임진왜란 이전부터 화승총이 전래되어 있었습니다. 우리 조선군이 화승총(조총)을 처음 보고 놀라서 우왕좌왕 했다라기 보다는 대규모로 전략적으로 사용된 조총에 활로 대응하니 전투가 쉽지 않았던 것이죠. 중국의 명나라는 청나라 시기처럼 서양의 문물이 계속해서 들어왔고 조선 또한 명을 통해서 신문물들을 접했기에 일본만 조총을 알게 된 것이 아닌 조선도 이미 알고 있고, 분석도 해놓은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조선은 화승총의 단점을 강조하여 정식 군편제로 활용하지 못했지만 일본은 이를 적극 받아들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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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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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김구 선생님의 묘는 효창공원에 있니요?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효창공원의 이름은 과거 조선시대 왕실묘가 있던 효창원에서 비롯된 이름입니다. 그만큼 상징성이 있는 공간이었고, 때마침 일제시대에 조선 왕실의 땅을 정리하던 일제에 의해서 왕실묘가 다른 지역으로 이장되며 빈공간이 되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김구 선생의 묘를 상징성이 높은 해당지역에 묻게 되었고, 이후에도 독립운동가 여러분이 해당 지역에 묘를 쓰게 되는 것이죠. 참고로 김구 선생은 1949년 사망하셨고, 우리나라 현충원은 1955년 조성되었기 때문에 사실 현충원에 묻히기는 불가능한 시기적인 제약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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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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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르주아라는 말은 언제적 생긴단어인가요?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부르주아는 원래 성 안에 있는 도시에 거주하는 사람을 지칭한는 단어였으며, 우리가 흔히 부르는 부르주아는 산업혁명 이후의 의미로 알고 있는 것이죠. 산업혁명 이전까지는 도시에서 거주하며 수공업이나, 상인 등을 지칭하는 일반적인 단어였으나 대항해시대, 산업혁명 등에서 자본가가 되어 공장을 소유하고, 노동자를 고용하여 막대한 부를 쌓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마르크스는 노동자를 착취하는 자본가 계급 "부르주아"와 대립하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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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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