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사관이라는 역사관은 틀린 것인가요?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근대화를 이룬 것이 일본의 식민지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식민사관이죠. 그러면 반대로 일본의 식민지가 아니었다면 근대화를 못 했을 것이라 생각하시나요?조선 후기가 되면 분명 한계가 있지만 실학이 나오고, 일본이나 미국, 영국 등의 세계 각국의 각축전 속에서 조선 또한 변화하기 위해 여러가지 개혁들을 준비하고 실행하게 됩니다.또한 철도, 전기 등도 조선에 들어오게 되고, 단발령, 갑오개혁 등으로 신분제가 폐지되죠. 하지만 이러한 변화 속에서 일본에 의한 주권침탈이 발생하었고, 미국이나 영국, 러시아, 청나라 등의 관계 속에서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죠.그러면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서 근대화만 되었을까요? 수없이 많은 수탈, 인권유린, 반인권적인 행태들이 과연 근대화일까요?? 단순히 시간이 지나면서, 외국의 문물을 받아들이고 자체적인 개혁 등으로 근대화를 이룰 수 있었던 조선을 침탈하고 식민지화한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닌 그런 편협한 역사적인 식민사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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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 했던 베네주엘라가 최빈국으로 전략한 까닭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베네수엘라는 풍부한 석유자원을 이용하여 상당한 부를 누렸던 국가 중의 하나였습니다. 현재 중동의 석유 재벌 왕국들과 비슷한 느낌이지만 현재 중동 또한 석유가격 때문에 흔들리고 있는데, 베네수엘라는 조금더 일찍 위기를 겪게 됩니다.과거 석유가격이 높았을 시기에는 풍부한 석유를 수출하여 생긴 수입으로 상당한 복지정책을 펼치게 됩니다. 이는 국가의 수익을 국민이 나눠 갖는 모습으로 볼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석유 자원 외에는 별다른 산업화를 하지 못한 것이죠. 돈이 넘쳐나서 별도의 국가 산업기반을 마련하지 못했죠. 그렇기에 석유 가격이 급감하는 2000년대에 들어서는 이러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국가의 수익이 떨어지게 되죠.또한 베네수엘라의 정치 지도자로 잘 알려진 차베스, 마두로 정권은 부패한 정권으로서 자신들의 이익 위해 정치를 하였고, 결국 이러한 정치적 불안정은 외국자본의 이탈을 가속화 시켰죠.석유가격의 하락, 정부에 의한 환율 개입, 무능하고 부패한 정치라는 여러가지 요소들로 인하여 베네수엘라는 경쟁력을 잃었고, 속절 없이 무너져 결국 하이퍼 인플레이션으로 유명한 빈민국으로 전락하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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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때 북한 군과 우리 나라 군인 중에 어느 쪽이 더 사상자가 많았을까요?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한국전쟁은 약 3년 동안 벌어진 동족상잔의 비극이었습니다. 남침으로 시작된 전쟁은 양국의 군인, 민간이 뿐만 아니라 파병을 위해 지원된 UN군, 중공군까지 상당한 사망자, 부상자, 실종자가 발생하게 된 세계전쟁의 한 형태였습니다.남한의 경우 국군 사망자 137,899명, 부상자 450,000명, 경찰 사망 및 부상 10,000명 정도였으며, 북한군은 사망자 520,000명, 실종 및 포로 120,000명으로 엄청난 양국의 인명손실이 발생했습니다.추가적으로 UN군 전사자 40,000명, 부상자 100,000명, 중공군 사망자 116,000명, 부상자 220,000명으로 한국전쟁에 참여한 각국의 피해도 엄청났습니다.결국, 현재는 북한은 경제발전에 뒤쳐져서 전세계에서 가장 못살고, 인권이 말살된 곳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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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비상 계엄으로 인한 다양한 분야의 예측은.. ?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계엄령 자체가 과거 민주주의 운동을 탄압했던 물리적인 강압책이었기에 국내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상당히 관심 있게 보는 것 같습니다.계엄령은 물리적인 힘을 대통령과 군대에 밀어주는 형태이기 때문에 국민들의 기본권이 제한되며, 언론의 자유가 없어지고, 국회가 마비되며, 대통령에 의해 영장 없이 구속이나 제재가 가능하게 됩니다.이러한 공포가 과거에 여러번 발생했기에 우리나라 국민들의 반응도 심각한데요. 일단, 경제적으로 코리안 디스카운트가 심화되어 계엄령이 실패 했으나 주식이나, 경제 전망이 하향되고, 환율이 오르면서 수출 수입 기업 모두가 힘들게 되어 가고 있습니다. 또한 국민들은 연말 분위기가 어수선하기 때문에 모임이 줄어서 뉴스에서 보이 식당이나 여행 예약건수가 절반으로 떨어졌다고 하더라구요.하지만 다행인것은 우리 국민들은 스마트하고, 행동력이 강하기 때문에 이또한 이겨낼 것이라 믿고 있으며 향후 대통령이 바뀌고 정권이 안정화 된다면 지금이 바닥이라는 생각으로 더 위로 올라갈 것이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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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렁탕을 우리나라에서 처음 먹게 된 것은 언제인가요?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말씀하신 설렁탕의 기원은 여러가지 추측이 있으나 가장 대세가 된 기원설은 선농단에서 제사를 지낸 후 제사를 위해 도축된 소를 이용해 푹 고아서 만든 국물에 밥을 말아 먹어서 생겼다는 이야기가 대세를 이루고 있는데요. 그렇기에 선농에 탕이 붙어서 선농탕이었고, 발음하기 편하게 설렁탕 정도로 변형되어 있다라고 보는 것 같습니다.이러한 내용이 조선왕조실록이나 문헌 등에 등장하지는 않으나, 1924년 신문기사에 처음 등장한 기원설이라고 하죠.조선시대의 경우 왕에 의한, 양반에 의한 제사 등이 빈번했기 때문에 소에 대한 수요가 늘 있었을 것이기에 설렁탕 이야기가 완전히 불가능한 기원설은 아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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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에서 가장 오래된 피라미드는 언제 만들어진 것인가요?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이집트의 역사는 과거의 인물들 또한 오래전의 역사라고 생각할 만큼 상상 이상으로 오래된 역사인데요. 이러한 역사를 자랑하는 이집트의 대표적인 유적이 피라미드가 있죠. 피라미드는 고대 파라오의 무덤이라고 알려져 있으며, 내세를 믿었던 그들에게 있어서 무덤은 어떤 것 보다 중요한 것이며, 파라오 자신의 파워를 상징하는 것이라 여겼습니다.질문하셨던 이집트에서 가장 오래된 피라미드는 지금 사람들의 생각 속에 있는 원뿔의 평평한 면이 아닌 계단식 형태였으며, 현존하는 계단식 피라미드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은 제3왕조의 2대 파라오 조세르의 피라미드로서 약 BC2600년대건축자이면서 정치가였던 임호텝에 의해 설계된 유적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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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의 어떤 모습 때문에 흥청망청이란 말이 생겨났나요?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연산군은 즉위 후 여러가지 기행들을 보였는데요. 성격이 흉폭 했던 것은 기본으로 전국의 미녀 10,000명을 뽑아 궁궐로 모집하는 채홍사 라는 관리까지 파견하게 되죠. 이러한 미녀 중에서도 특히나 미모가 뛰어나고,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 추는 미녀들을 "흥청"이라고 불렀는데 이러한 "흥청"으로 대표되는 연산군의 패악질이 "망청"으로 이어졌다는 유희적인 표현으로 "흥청망청"이라는 부정적인 의미가 만들어진 것이죠.사실 대표적인 "흥청"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장녹수 였으며, 장녹수에 빠져서 미쳐서 살았던 연산군이 결국 중종반정으로 왕위에 쫓겨나 유배를 가고 장녹수는 참형에 처해진 것으로 본다면 "흥청망청" 맞는 표현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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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 태권도가 어떤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이 되었나요?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태권도 종주국인 대한민국은 그동안 태권도를 전세계에 알리고, 많은 세계인들이 태권도를 배우고 있습니다. 태권도는 운동의 목적도 있지만 정신수양, 부모에 대한 효, 단체규율 등을 가르치기에 아이를 키우는 부모나, 태권도를 배우고자 하는 젊은이들에게도 인기가 많습니다. (즐라탄 이브라이모비치가 대단한 태권도 유단자라는 것도 유명하죠.)태권도는 사실 올림픽에 채택된지 벌써 30년을 맞이했습니다. 1994년 파리 IOC 총회에서 태권도가 만장일치로 채택된 것인데요. 하지만 여러해가 지나면서 태권도가 박진감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여러번 퇴출 위기를 겪었으나 승리 규정 등을 점수 누적제에서 3판 2선승제, 라운드 승부로 변경해가면서 변신을 이루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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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조는 중종이 왕이 되게 어떻게 도왔나요?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1506년 중종반정으로 중종이 즉위하였고, 조광조는 1510년 과거에 급제하였기에 중종반정에 있어서 조광조의 역할은 없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사실 조광조는 중종반정에 기여한 인물이 아닌 중종이 즉위하는데 큰 역할을 했던 인물들이 사망하자 새로운 정치 파트너로서 선택된 인물이 조광조 였던 것이죠.조광조는 원래 훈구파 집안이었으나 김굉필의 수하에서 공부하며 사림을 대표하는 인물이 되었고, 사림으로서 다시 훈구파에 의한 폐단이나 문제들을 개혁해 나갔던 것입니다.하지만 너무나도 강성했던 성격과 급진적인 개혁으로 인하여 중종의 선을 넘어서게 되었고 주초위왕이라는 사건으로 인하여 축출되는 비운의 혁명가이기도 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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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지철은 호가호위 하던 사람인데 왜 그리 박정희 대통령은 그를 가까이 했을까요?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차지철은 육군사관학교가 아닌 포병 장교 임관을 한 군인으로서 박정희 군사쿠데타에 가담하였다고 하며, 이후 국회의원 출마를 하여 당선되기 까지한 조금은 특이한 이력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했던 그를 경호실장으로 추천했던 인물은 다름 아닌 육영수 여사였으며, 이러한 일로 인하여 박정희는 차지철을 대통령 경호실장으로 앉혔고 차관급 이었던 경호실장을 장관급으로 격상시켜주기 까지 했죠. 이런 차지철은 박정희에 대한 극한의 충성으로 여러 무리한 일들을 하였으나 육영수여사가 추천했고, 충성을 다하는 모습에서 신뢰(?)할 수 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또한 민주항쟁 등의 문제에 있어서도, 국회의원들과의 문제에 있어서도 박정희 본인이 나서지 못하는 부분을 과감하게 돌진하는 모습에서 더 좋게 보았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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