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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말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으며, 언제 누가 한 이야기인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황금 보기를 돌 같이 하라는 말은 고려시대 말의 최영 장군이 이야기 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최영 장군의 대쪽 같은 성격을 유추할 수 있으며, 그만큼 물욕 보다는 양심을 지키라는 그런 의미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고려말기가 혼란한 시기였으며 권력과 재물이 함께 움직이는 부패한 사회였다라는 것을 옅볼 수 있는 말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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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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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광활한 제국에 기인한 동,서 로마제국에는 각각 황제가 통치했던 건가?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테오도시우스 황제가 사망하면서 거대한 로마제국은 동서로 분할 되게 되고, 능력이 부족했지만 황제의 아들이었기에 두 아들이 각각 서로마, 동로마를 각각 통치하게 되는 결과를 만들게 됩니다. 영원한 분할을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동서로마는 결국 영원히 나누어짐과 동시에 국력 또한 약화되어 서로마는 오래가지 못하고 멸망하고, 그나마 동로마는 무역, 상업 등을 기반으로 더 오래 존속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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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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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피라미드를 만든건 사실 노예가 아니였나요?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맞습니다. 사실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노예가 아닌 급여를 받고, 휴가 휴식을 보장 받은 일꾼들이 일을 하여 만들어낸 건축물이죠. 자료를 찾아보면 급여로 빵을 받았으며 휴가를 다녀왔다는 등, 파업을 했다는 등의 기록이 남아 있어서 이를 짐작하게 할 수 있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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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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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균의 3일천하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갑신정변은 개화파 중에서도 일본의 세를 뒤에 두고 일으킨 급작스러운 소수엘리트에 의한 정변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군사력으로나, 동참하는 사람의 인식이나, 모든 것들이 열세에 있었죠. 그래도 이들이 믿는 것은 일본군이었는데 갑신정변으로 청나라군이 개입하자 일본군은 이에 대응을 하지 않게 되고 세력자체가 미비했던 정변세력은 정리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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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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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문화재는 국보와 보물이 있습니다. 이 차이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역사교육을 전공하면서 교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국보와 보물은 큰 차이가 없다. 둘 다 모두 중요하고 귀한 나라의 문화재라고 하셨던게 생각이 나네여.엄밀히 따지면 국보는 희소성을 가지면서 그 수가 유일하거나, 한반도에서만 볼 수 있는 고유한 것이라 할 수 있고, 보물의 경우는 국보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중요하고 지역적인 특색 등을 나타내는 문화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물론 지정된 수에서도 국보 보다 보물의 숫자가 몇 배 더 많은 것으로 보아서도 보물이 조금더 큰 범위라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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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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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슬림이라는 분들은 보통 어떤 종교인분들을 말씀하는건가요?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무슬림은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을 무슬림이라 칭하고 있는데, 사실 이슬람교, 유대교, 가톨릭은 모두 한 뿌리에서 나온 서로 다른 종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일신이라는 공통점이 있으나 해석적인 부분에서 서로 다르기에 결국 유럽, 중동 서로 국가 간에 십자군 전쟁 등 끊임없이 대립하고 싸우기도 했죠. 지금도 결코 좋은 사이는 아닌 그런 관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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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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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왜 독초까지도 독을 빼면서 나물이나 이런것을 먹었나요?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사실 독초라는 것을 알면서도 먹게 된 것이야 엄청난 흉년이 들거나 전쟁이 일어나면 먹을 것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에 다른 방법이 없으니 먹게 된 것이 아닐까요. 사실 한반도에서 벼농사를 하는 것은 쉬운 조건이 아닙니다. 동남아처럼 무덥고 습하며 연중 기온이 평균적인 곳에서 잘 자라는 벼농사가 한반도에서 주력 농산물로서 길러지니 흉년이 들면 엄청난 데미지를 주었기에 그나마 남겨진 작물이 독이 있거나 하더라도 먹게 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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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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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지역감정과 정치성향을 떠나 한마음으로 뭉쳐 나라의 미래를 위해 힘좀 합쳤으면 좋겠습니다.그런데 왜 안될까요?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이미 공고히 만들어진 지역감정에 따른 정치성향이 몇십년 동안 선거에서 작용되었기 때문에 쉬운 부분은 아닌거 같습니다. 보수, 진보 모두가 지역감정을 이용하는 부분이 있으며 지역의 주민들 또한 이를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투표 결과가 항상 좌우가 나뉘는 것이라생각됩니다. 하지만 그래도 요즘은 많이 고치기 위해 노력하는 것 같고, 저 또한 최대한 여러 정보를 토대로 투표를 하려고 노력합니다.결국은 국민들이 스스로 공부하고 노력하면서 국가 경제가 발전하는 방향으로 선거 때마다 국민의 생각을 보여줄려는 노력이 있다면 결국 지역감정이 줄어들고, 정치인들도 따라올 수 밖에 없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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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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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는 극단적인 평가를 왜 동시에 받나요?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경제성장을 했다라는 결과물이 평가를 높게 하기도 하지만 결과를 만들기 위한 과정에서 수많은 국민들이 고통을 받았던 것들과 함께 독재를 누리기 위해서 국민들을 누르고, 문제들을 힘으로 해결 했다는 부분에서 평가를 낮게 만드는 것이죠. 박정희가 아니더라도 경제성장은 충분히 이루어질 수 있었다는 의견이 있기도 하죠. 박정희가 그 시대에 대통령을 했을 뿐이라는 평가절하 가 존재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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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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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6월 10일이 민주화운동기념일이라고 하는데, 어떤 민주화운동이 있었는지 잘 모르겠어요.
안녕하세요. 권기헌 전문가입니다.1987년 6월 10일 부터 일어나 대규모 민중평화시위를 일컬어 6.10민주항쟁이라 합니다. 전두환 정권은 87년 4월 간선제를 통하여 후임 대통령을 뽑으려 했고, 노태우를 밀어주려는 것이었죠. 게다가 당시 1월에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등으로 국민들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강했었기에 결국 87년 6월 10일에 대규모 민주항쟁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이 결과 노태우가 간선제 폐지, 정치범 석방 등 민주화에 대한 조처가 이루어지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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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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