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조선시대의 궁녀들 직급체계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김소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궁녀는 왕족을 제외한 궁중 모든 여인들의 총칭하는 말로, 나인[內人]들과 그 아래 하역(下役)을 맡은, 무수리[水賜]·각심이(방아이)·방자(房子)·의녀(醫女)·손님이라 불리는 여인들이 범주에 듭니다. 궁녀의 신분적 등급은 견습나인·나인·상궁의 세 종류로 나뉘며, 그 세 종류 가운데에서도 입궁 연조와 소속 부서에 따라 차등이 있었답니다. 같은 상궁이라도 경력에 따라 정7품도 있고 정5품도 있으며, 또 같은 정5품의 상궁도 소속 부서의 격에 따라 달랐습니다. 일반 개인 가정으로 비교해보면, 지밀나인은 몸종 격으로 가장 격이 높고, 침방·수방 나인들은 침모(針母), 소주방과 생과방은 찬간(饌間)의 식모들인데, 궁중에는 무수리가 하역(下役) 즉, 가장 잡일을 맡았습니다. 세답방은 표모(漂母)로서 빨래 일을 맡는데, 일반 개인 가정에서는 빨래를 보통 노비가 하고, 다리미와 다듬이질은 대개 경험이 많은 부인들이 맡았습니다. 즉, 궁녀의 격은 지밀이 가장 높고, 다음이 침방과 수방으로, 이들은 양반 부녀와 같이 치마도 외로 여며 입고 앞치마를 두르지 않고 길게 늘일 수 있는 특권을 가졌습니다. 그것은 마루 위에서 할 수 있는 일의 성격상 소주방이나 세답방 나인같이 치마를 걷어 올릴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위 세 부서 외의 다른 부서는 치마를 바로 입고 앞치마를 위에 둘러 걷어 올렸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생각시가 있는 곳도 지밀과 침방·수방뿐이었습니다. 나머지 부서들은 생[絲楊]을 맬 수 없으며, 머리를 길게 늘어뜨립니다. 궁녀 사회에도 간부들이 있었는데, 총수격인 우두머리 상궁과 그 밖의 맡은 바 직책의 중요성에 따라 특별 대우를 받는 궁녀들이 있었습니다. 제조상궁(提調尙宮)으로 큰방상궁이라고도 하는데, 이들은 많은 궁녀들 중에 어른으로 왕명을 받들고 내전(內殿)의 재산 관리를 담당했으며, 아리꼬[阿里庫]상궁으로 불리는 부제조상궁은 내전의 창고(倉庫, 아랫고·下庫)의 물품을 관리했습니다. 지밀상궁으로도 불리는 대령상궁(待令尙宮)은 왕의 측근에서 항상 그림자와 같이 시위(侍衛)했고, 왕자녀의 양육을 담당했던 보모상궁(保姆尙宮)이 있었으며, 이들 중에서 왕세자의 보모가 가장 격이 높았습니다. 지밀상궁 중에서 궁중 의식이나 잔치 때 왕을 비롯한 왕비·왕대비 등의 인도와 진행을 담당했던 시녀상궁(侍女尙宮)은 지밀의 서책 관리와 국상(國喪) 때 곡읍(哭泣)을 담당하기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감찰상궁(監察尙宮)은 궁녀들의 상벌을 담당했으며, 감시병 구실도 겸한 두려운 존재였습니다. 궁녀의 출신 계급은 지밀과 침방·수방은 중인 계급, 기타는 대개 상민 계급이었습니다. 입궁 연령은 지밀이 가장 어려 4∼8세, 침방·수방이 6∼13세, 그 밖은 12∼13세가 관례였습니다. 궁녀는 입궁 후 15년이 되면 계례를 치르고 정식 나인이 되었는데, 남색 치마에 옥색 저고리, 머리에는 개구리첩지를 단 제복이 일생 동안 그들의 복장이었습니다. 나인이 된 뒤 다시 15년이 경과되면 상궁으로 승격했으므로, 가장 빠른 4∼5세 입궁을 기준으로 할 경우에 35세 이후라야 상궁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외도 있었는데, 왕의 후궁이 되면 20대의 상궁도 있을 수 있었습니다. 이런 궁녀는 왕의 자녀를 낳기 전까지는 상궁의 신분에 머물러 있지만, 그 대신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왕의 곁에서 시위만 하면 되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경우를 승은상궁(承恩尙宮)이라 했습니다. 이들이 왕의 자녀를 낳게 되면 종2품 숙의(淑儀) 이상으로 봉해져서 독립 세대를 영위하게 되었습니다.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