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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정훈 전문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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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훈 전문가
브이브라스
Q.  소련이 붕괴한 이후 러시아 주변 나라들은 분리 독립하게 된 것인가요
안녕하세요. 김정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퍼온 자료입니다*◆ 소련 붕괴의 원인 미국과 비슷한 힘을 자랑하던 초강대국 소련이 붕괴했다고 하면 큰 쿠데타라던가 무력이 동반되는 사건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만, 의외로 소련은 조용히 해체의 수순을 밟았습니다. 유일하게 1991년 8월에 쿠데타가 일어났지만 실패로 돌아갔으므로 전체적으로 볼 때 평화로웠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몇십 년 동안 미국과 핵전쟁 위기에 있었던 소련의 붕괴가 조용했다는 것은 놀랄만한 일이지요. 그럼 소련은 왜 붕괴했을까요? 설립에서 붕괴까지 간단히 소련의 역사를 훑어나가며 이유를 살펴봅니다. 반응형 (adsbygoogle = window.adsbygoogle || []).push({}); 1. 스탈린 이후의 소련 소련의 해체는 조용했지만 그 이전까지는 폭력으로 얼룩진 역사였습니다. 바로 공포정치의 대명사였던 소련의 지도자 스탈린 때문입니다. 소련을 잘 모르더라도 영화나 책에서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정도로 유명한 이름이죠. 스탈린이 죽은 후 소련은 탈 스탈린화를 내세우며 그의 지배 아래에서 만들어진 조직이나 형무소를 모두 해체하고, 엄격한 규제들도 완화시켰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국민생활을 공산당 지배 아래에 두고 공산주의를 확장시키려는 활동을 계속했으며 지배 아래 있던 공화국들에 대해서 철저하게 통제하고 억압했습니다. 또한, 최대의 적이였던 미국과의 경쟁으로 엄청난 규모의 자금을 써버렸습니다. 우주로 쏘아 올린 인공위성, 원자폭탄 탑재 가능한 탄도미사일 등을 개발해 미국보다 우위에 서기 위해서 거액의 예산을 쏟아부은 것이죠. 2. 고르바쵸프의 등장과 글라스노스트, 페레스트로이카 단행 1985년 미하일 고르바쵸프가 최고지도자가 됩니다. 소련은 공산당 체제의 구축을 위해 거액을 써버렸기 때문에 정치나 경제등 다른 곳이 그만큼 정체되어 있었으며, 특히 경제적 제도 실패의 결과가 계속해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소련 정치를 만들어낸 비밀주의적 분위기와 엄격한 조직 때문에 지금까지 와 다른 큰 개혁을 하는 것이 상당히 어려운 시기에 고르바쵸프가 지도자가 된 것이죠. 그러나 고르바쵸프는 당시 경제와 정치제도를 그대로 두고 소련을 유지해 나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고르바쵸프가 시행한 개혁제도로 유명한 것 또는 소련붕괴의 원인으로 주목되는 것이 바로 글라스노스트 ( 글라스노 스치)와 페레스트로이카 실행입니다. ▶ 글라스노스트 ( 글라스노스치 ) 란?정보공개, 열림, 개방 등의 뜻으로 번역되는 러시아어로, 고르바쵸프가 실시한 정보 개혁정책을 말합니다. 정치적 자유를 제한하고 언론을 탄압하는 것의 규제를 완화하여 당시까지 금지되었던 출판물이나 영화 등을 공개했습니다. 또한 공산당 이외의 정당이 선거에 출마하는 것이 가능해지고 정치범의 석방이 실시되었습니다. 소련 국내에서도 자유로운 발언이 가능해져 정치 자체에 관한 토론이 활발해지게 되었죠. 물론 전면적인 개방은 아니었지만 당시까지 수동적이었던 국민들이 많이 바뀌게 되고 소련 국내의 비리나 부패에 대해서도 비판하는 목소리가 등장하게 됩니다. 이 개혁정책이 훗날 소련붕괴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됩니다. ▶ 페레스트로이카 란?개혁 혹은 재구축이란 뜻으로 번역되며, 정치체제를 개혁해 소련이 안고 있는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 목적입니다. 점진적으로 시장자유화를 추구하여 페레스트로이카 실행으로 노동자의 조합 결성이 가능해지고 사적인 경영 ( 개인경영 )을 허락받는 사람도 생겨나게 됩니다. 이 또한 훗날 고르바쵸프의 사임과 소련 붕괴로 이어지는 개혁이 됩니다. 글라스노스트와 페레스트로이카 개혁은 원래 소비에트 연방이 가지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목적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소련의 강력한 공산주의 정권의 지배가 약해지게 되었으며, 경제와 국민에게 악영향을 미치게 되어 소련 붕괴의 직접적 원인이 되었습니다. ◎소련 국내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가 높아짐 - 비판적 의견을 가진 사람은 존재해왔지만 철저한 탄압으로 표현하지 못했었죠. 개혁정책 실시 후 자유롭게 말할 수 있게 되어서 소련 국내 자체에 대한 비판이 늘어났습니다. ◎더욱 심각해진 경제상황 - 오래동안 정권에 의해 직접적인 관리가 된 경제였으므로 새로운 소련의 시장은 발전이 아주 느렸으며, 사람들은 처음으로 심각한 식량부족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3. 소련 붕괴 직전 발트3국의 독립 결과적으로 1980년대 후반에 소련에 속한 공화국들은 독립을 요구하게 되고 1987년에 에스토니아를 시작으로 리투아니아와 라트비아의 발트 3국이라 불리는 나라가 독립을 선언하게 되었습니다. 이 영향으로 중앙아시아와 동유럽들의 나라들, 현재의 조지아 공화국이나 카자흐스탄, 우크라이나도 독립을 하게 되었죠. 4. 무너진 베를린 장벽 거기에 더해 1989년에는 폴란드의 노동조합에서 시작된 연대운동에 의해 소련에서 독립한 자유선거가 실시되고, 폴란드는 실제로는 소련의 이름뿐인 공화국이 되었습니다. 또한 소련이 지배하고 있던 동베를린 ( 동독)과 서방 제국이 지배하던 서독을 갈라서고 있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게 되었죠. 그리고 1991년 보수파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8월에 구데타가 일어났지만 실패로 돌아가고 그 해 12월 25일에 고르바쵸프는 지도자를 사퇴, 소련은 공식적으로 해체를 발표했습니다. ◆ 소련 붕괴 후 일어난 사건 1. 구 소련 공화국들의 경제 붕괴 1985년 고르바쵸프가 서기장으로 취임했을 때 소련의 경제는 이미 20년 동안 정체상태였기에 경제개혁의 필요성이 절실했습니다. 식료품 슈퍼의 진열대는 텅 비어있는 일이 자주 있었고 식량을 구하기 위해서 긴 줄을 서 기다려야 했고요. 또한 소련경제는 국내의 풍부한 에너지자원과 원료조달의 기반이 있었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볼 때 외국과의 무역 의존도가 낮았습니다. 1985년 소련의 GNP에서 수입수출이 차지하는 비율은 겨우 4%였으니까요. 소련은 소련을 구성하는 공화국들끼리 경제가 돌아가는 상태였고 무역이 필요한 경우의 상대국도 거의 공산주의 국가나 동유럽국에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즉, 소련이 있었기에 주변 나라들도 경제가 돌아갔던 거죠. 소련 붕괴 후 소련 공화국들의 경제가 일시에 무너져내린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습니다. 독립한 구소련 국가들의 만연한 정치부패도 경제상황을 더 악화시켰고요. 러시아의 경우 2000년에 취임한 푸틴 대통령 이후 조금씩 경제적 회복을 보여주고 있는 반면에 아르메니아 같은 구소련 국가는 2018년까지 독재 상태가 계속되었으며 벨벳혁명으로 겨우 개혁의 조짐이 보이고 있는 상황입니다. 2.사회적 대혼란 소련 붕괴 후 소비에트 연방에 속했던 많은 공화국들에 대혼란이 일어나며 범죄율이 엄청나게 상승하게 되었습니다. 러시아 정부내에서도 부정비리가 성행했고요. 정부의 인프라들 대부분이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되었고, 급기야는 소련의 공무원들 ( 경찰, 전 KGB, 병사들 등 )은 급여도 제대로 받지 못해 안정된 수입을 찾아 마피아 집단으로 흘러들어 가는 일도 일어났습니다. 힘이 약해진 러시아 정부를 대신해 나타난 신흥기득권층(올리가르히)이 러시아 국내의 통신사업이나 에너지 산업 등을 사들여서 치안과 법 실행을 제공하는 대신 일반 시민들에게 돈을 강요하는 일까지 일어났습니다. 푸틴 대통령 집권 후 올리가르히들이 숙청의 명목으로 많이 사라졌지만 또다른 기득권층들이 나타나 벌이는 부정부패와 온갖 비리들은 현재도 별 다를 바 없습니다. 3. 미국의 영향력 확대 냉전시대 세계의 지배권을 놓고 경쟁한 소련과 미국 중 소련이 붕괴되어 사라지면서 자연히 세계의 패권은 미국으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세계 유일의 초대강국으로서 강력한 라이벌의 위협에서 해방된 것이죠. 결과적으로 미국정부는 제외국의 군사개입이나 경제제재를 자유롭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소련붕괴 후 약 20년 동안 미국이 차지했던 세계의 지배권은 최근에 들어서 국제사회에서 조금씩 약해져 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소련 해체 후 새롭게 탄생한 러시아 연방정부의 힘이 다시 조금씩 커지기 시작하면서 대립하게 된 것이죠. 또한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불법 점령 등을 계기로 보면 러시아는 또다시 세계의 지배적인 위치를 노리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에는 그 야욕을 드러내며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죠. 거기에 더해 중국과 러시아의 친밀한 관계 또한 미국의 단독적인 지위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출처: https://ishigakilife.tistory.com/entry/소련-붕괴-이유 [공부하고기록하는블로그:티스토리]
Q.  영화를 감상할때 감독의 의도를 알고싶어요
안녕하세요. 김정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영화뿐 아니라 소설이나 희곡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먼저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어했느냐(줄거리가 아니라)의 주제를 찾아내는 것입니다.이 주제란 결국 감독이 전체적으로 영화적 표현매체나 표현 요소를 통해 자기 나름대로 1시간 40분이나 2시간 영상을 보여주면서 무엇을 이야기하려 하느냐의 핵심이죠. 어떤 사람들은 쉽게 메시지를 전하려고 하는데요, 예를들면 '대부'는 '돈 코를레오네'가족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면서 마피아의 생태와 마피아를 통한 악 속에서의 권력 투쟁을 그리면서 인간의 삶의 한 모습을 보여줍니다.그것은 인간의 이야기이며 동시에 한 폭력집단의 이야기도 되고 모든 권력의 속성을 이야기하려는 것이 됩니다. 그속에는 인간의 폭력이나 권력, 배신, 보복, 그리고 죽음, 생명의 탄생 그밖에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로서의 가정과 사랑의 모습이 담겨 있는 것이죠. 이 작품을 만든 프란시스 포드 코플라는 미국의 한 기자와의 회견에서 '인간의 폭력, 권력의 속성 그리고 그 속에 도사리고 있는 부패를 그리려고 했다.'고 밝혔는데요그러나 관객이 이 마피아의 이야기를 보면서 이러한 작품 의도를 느낄 수도 있고 안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우선 이 작품이 코폴라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 즉 그 주제가 그가 표현한 다른 영화적 요소에 의해 얼마나 잘 표현되어 목적한 곳까지 관객을 몰고 갔느냐에 달려 있겠지만 감독이 설명하려는 주제와 관객이 보고 느끼는 주제가 다를 수가 있다는 거죠. 주제 파악의 가장 이상적인 형태는 감독이 모든 영화적 표현을 잘 성공시켜 하고 싶은 이야기 즉 주제를 정확하게 관객에게 전달하는 것입니다.그러므로 우선 영화를 보는데 있어서 그 주제가 무엇인가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중요합다.이 주제는 영화가 이야기(story)를 가지고 있는 극영화(fiction film)인 경우 우선 시나리오에 의해 1차적으로 구성되고 감독에 의해 문자에서 영상으로 옮겨지는 것인만큼 전체적인 시나리오가 상당히 크게 작용하며, 시나리오에 있어서는 영화를 구성하는 구설 즉 플로트라는 것이 예전부터 크게 작용합니다.'왕비가 죽었다. 왕이 죽었다.'는 것은 하나의 줄거리이지만, '왕비가 죽었다. 그 슬픔으로 왕도 즉었다.'는 하나의 플로트가 되는 것입니다.이것은 이야기의 동기나 얽힘의 기본 구성이 되는데, 플로트가 먼저 있고 주제가 결정되는 수도 있고 주제가 먼저 결정되고 플로트가 짜여지는 수도 있습니다.'인생이 무상하다'는 주제를 전하기 위해 인생의 덧없음을 말해주는 플로트를 짤 수가 있는 것입니다.그러나 실제에 있었던 이야기나 체험에서 나오는 사건이었을 때 그것을 허구로 하여 '인생이 무상하다'는 주제로 유도될 수 있죠. 따라서 영화감상에 있어서 그 작품의 주제가 무엇인가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디만 그런 주제가 없는 영화도 허다합니다.우리가 말하는 이른바 오락영화나 상업영화에서 주제는 가장 기본적인 권선징악의 기초적인 틀위에서 순간 순간을 즐겁게 해 주는 것으로 일관할 수 있습니다.'인디아나 존스'같은 영화가 그런 것이 되겠죠 ? 또 주제라는 것은 극영화의 전유물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이른바 '아르방가르드' 영화 즉 전위 영화나 실험 영화에서 주제란 극영화의 경우처럼 플로트나 그것에 의해 영화적으로 구성되는 것과는 다른데, 예컨대 '앙다루시아 개'(1928년) 같은 전위 영화는 사람의 눈이 크로즈 업되고 구름이 지나가고 사람이 면도날로 눈알을 도려내고 그리고 그 눈알이 손바닥에 담깁니다. 영화가 이렇게 시작되어 마치 우리가 꿈속의 심연에서나 연결이 가능한 영상으로 논리성을 뛰어넘어 연결되고 마치 의식의 생각나는 대로의 자동기술과도 같은 것으로 시종될 때 여기서도 주제를 찾아야 할 것인가? 그럴 경우 가장 중요한 것은 영화의 또다른 특징인 영화 속의 리듬이라든가 영상과 영상의 연결에서 오는 충격, 화면과 화면의 시간의 배율, 그리고 느낌으로서의 어떤 허무한 기분 등의 다른 순수 영화적 요소에 의해 영화의 예술성을 발견해야 할 것이입니다. 영화에 있어서는 연극적인 요소나 음악적인 요소, 미술적인 요소 등 다른 예술이 갖고 있는 요소가 섞이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지만 그것은 다 섞이어 영화적인 것으로 뒤바뀐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주제를 파악한다는 것은 먼저 영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다른 요소들, 예컨대 극영화의 경우 시나리오 자체가 시각적으로 표현되어 나가는 힘이라든가 배우들의 연기력이라든가, 또 촬영의 짜임새 있는 구도나 아름다운 화조나 음향의 효과, 음악의 분위기 등이 모여서 하나의 주제를 이끌어 나가는 데 이바지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므로 원작이나 시나리오가 훌륭한 작품도 감독이나 그것을 이끌어 나가는 스탭들의 미숙으로 실패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프랑소와 뜨뤼포의 '부드러운 살결'이나 끌로드 샤브롤의 '부정한 아내'와 같이 하찮은 삼각 관계의 치정적 사건들을 다루었어도 매우 훌륭한 작품이 될 수 있었는가 하면, 스땅달의 '적과 흑'은 그 훌륭한 원작에도 불구하고 끌로드 오땅 라라가 영화로 만들었을 때는 실패작이 될 수도 있었죠. 주제를 파악한다는 것은 우선 감독의 의도와 목적을 파악한다는 것이 됩니다.그러나 감독의 의도나 목적을 통한 주제 전달에는 그것이 영화인 한 여러 가지 요소의 배합과 조화가 궁극적으로 어떻게 이러어지느냐에 성패가 달려 있습니다. 시각적인 요소 /'영화의 탄생으로 인해 인간은 '시각적 인간(Der Sichtbare Mensch)이 되었다.'고 벨라 발라쥬는 주장했고 그것은 사실 20세기를 통해 진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시각적인 요소의 기본은 영상과 편집 또는 몽따쥬임은 이미 위에서 말한 것과 같습니다. 영상이란 사물이 나타나 보여지는 실체로서 시각적인 것의 대표적인 것입니다. 따라서 영화를 가장 쉽게 정의하면 '움직이는 영상의 예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영상은 감독이 한 화면을 어떻게 구성하느냐의 방법과 비춰지는 인물이나 사물 즉 피사체라고 알려진 것을 어떤 각도나 샷으로 잡느냐가 1차적으로 중요합니다. 얼굴만 크게 나오는 크로즈 업이라든가 전신이 나오는 풀 샷, 또는 원경인 롱 샷, 그리고 화면 내부에서의 갈등에 의해 크게 달라집니다. 구도나 갈등은 미술에서나 사진에서 온 것일 수도 있으나 영상은 움직인다는 데서 그 공간이 시간의 변화에 의해 결정되고, 시간이 공간의 변화에 의해 결정됩니다. 예컨대 시간의 흐름은 비가 물통에 차는 것으로 표현되는데, 이것을 흔히 '시간의 공간화', '공간의 시간화'라고도 하는데 유동적인 시간에 따라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편집 또는 몽따쥬 즉 영상을 일정한 창조적 순서에 의해 연결시키는 것입니다. 이를 '시적 가위'라고 표현한 사람도 있으나 영상은 이 두 가지 기능에 의해 시각적인 특징을 가지는 것이죠. 따라서 감독이 주창하려는 주제로 치달아 갈 때 이 두 가지 요소가 주는 아름다움이나 힘이 얼마나 아름답고 또 강력하게 작용하는가를 느끼거나 찾아내게 되는 경우 시각적인 요소는 중요한 감상의 포인트가 될 것 입니다. 이와 같은 시각적인 요소는 감독의 연출 스타일을 결정지어 주는데요, 훌륭한 감독이나 이른바 작가라고 알려진 감독은 자기 나름대로의 독특한 연출 스타일을 가집니다.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는 롱 샷으로 벌판이나 광장을 잡음으로써 현대인의 마음 속의 고독이나 황량감을 표시합니다. 감독은 얼마든지 마치 소설가가 그렇듯 자기 문체, 즉 영화적 표현의 독특한 언어와 자기 세계를 가질 수 있습니다.이런 시각적인 요소, 즉 실내 장면일 때는 장치라든가 의상이, 실외 장면일 때는 인공적으로 지어놓은 세트나 서부영화에 흔히 나오는 미국의 자연 풍경 등이 모두 중요한 요소로 등장되고 감상자는 그 아름다움을 즐겨야 합니다.그리고 큰 것과 작은 것, 수직적인 것과 수평적인 것, 평면과 입체적인 것 등 화면 내부 속에서의 사람이나 사물의 갈등이 크게 작용하는 시각적인 요소임을 인식하고 그 대비나 갈등의 묘미와 효과를 발견해야 합니다. 이것은 영화 언어의 발달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몽따쥬가 중심이 된 것이냐(소련의 몽따쥬 이론가들처럼) 또는 화면을 절단시키지 않고 한 샷으로 처리해 나가며 공간의 깊이를 추구하여 한 공간 속에 시간을 지속시키는 것 "'시민 케인'의 오손웰스처럼"이냐라는 두 개의 극단적인 영화 언어의 대비 속에서 그 묘미를 찾는 영화언어와 이에 따른 감독의 영화적 언어의 모색, 즉 기법에의 한 묘미를 찾아내는 데까지로 발전해 나가면 이미 영화 감상은 초보적 단계를 넘어서게 되는 것입니다. 연극적 요소 / 사람들은 흔히 영화는 연극에서 왔기 때문에 연극의 산물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큰 잘못입니다.영화는 그 발생 과정을 살펴보면 알 수 있듯이 ①움직이는 그림 ② 환등 ③ 사진에의해 결국 영화의 발명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 제작과정도 완전히 기계적이고 과학적인 것으로 연극과는 다른 것입니다. 하지만 극영화인 경우 극적인 시나리오가 있고 배우가 등장함에 따라 연극에서 유래되었거나 연극과 흡사하다고 믿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전혀 잘못된 생각입니다. 물론 영화에도 연극의 희곡에 해당하는 시나리오가 있고 연출(감독)이 있으며 또한 배우가 연기를 하지만 그것은 모두 무대 위에서 연출되는 연극과는 다르죠. 우선 그 표현하는 시간과 공간에 있어서 영화는 자유롭고 변화무쌍하고, 현재에서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고, 공간에 있어서도 다양합니다. 그리고 영화는공간별로 촬영을 하기 때문에 10년 전의 설악산, 오늘의 설악산, 3일전의 설악산 장면을 촬영한 경우라도 모두 주인공을 한 장소에 등장시켜 촬영하는 것입니다.따라서 영화연기는 무대연기와 같이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 공간의 변화와 시간의 변화에 따라 다를 뿐만 아니라 화면에 잡히는 배우의 모습이 전신일 때가 있고, 얼굴만이 크로즈 업 될 때도 있으며 샷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대 연기와는 근본적으로 다르고, 이것을 결정하는 것이 감독의 이른바 콘티뉴티입니다. 연기의 바탕도 무대연기와 흡사할 수 있지만 현대에 와서는 개성 있는 연기가 강조됩니다. 극단적으로 감독의 소도구처럼 그 기능이 약화되는 경우도 있구요, 그러나 배우의 연기나 매력은 영화의 중요한 즐거움의 하나이고, 따라서 이 연극적인 감동은 줄거리나 플로트나 연기에 강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영화적 표현의 강도나 그 리듬 즉 시간적 요소와 음악적 요소에 의해 이루어지느냐에 달려 있다고 많은 영화 이론가들은 주장합니다. 배우의 강렬한 연기보다 어떻게 가속적으로 화면을 교차시켜 긴박감을 주느냐 하는 리듬의 추출(이것은 몽따쥬로 가능하지만) 등이 더욱 영화에 있어 드라마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영화에 있어 감독의 연출력을 통해 관객이 감동을 하거나 즐거움을 느끼거나 아름다움을 찾게 되는 것은 무대 위에서와 같은 연극적인 요소가 아닌 영화의 특성을 살린 드라마의 힘이 창조된 것인만큼 이에 유의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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