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중국통일한 수나라는 왜 고구려에 졌을까요?
안녕하세요. 조영민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일어난 배경:수나라가 중국을 통일하고 한반도 쪽으로 세력을 펼칠 것을 대비하여 고구려는 고구려의 공격을 받았던 신라가 사신을 수나라에 보내어 도움을 요청. 살수대첩1. 정의 12년(영양왕 23) 평양성 부근까지 침략하였다가 후퇴하는 수(隋)의 군대를 고구려가 살수(薩水:지금의 청천강)에서 크게 격파한 싸움. 2. 과정 고구려는 4세기 이래로 분열을 거듭하던 중국사회를 통일한 수와 동아시아의 질서를 재편하는 과정에서 전쟁을 하였다. 따라서 고구려와 수는 물론 북방의 유목종족들, 서방의 종족들, 백제, 신라 등이 직접 간접적으로 참여한 국제대전이었다. 598년(영양왕 9)에 고구려는 랴오시를 선제공격하고, 수나라의 문제는 수륙양로를 통하여 공격을 가하였으나 패하였다. 그후 수는 내부의 안정과 군수물자의 수송에 활용하기 위하여 대운하를 파고, 군선을 대거 건조하는 등 고구려를 침략할 준비를 하였다. 고구려 또한 수와의 국경지대를 정탐하고 거란·말갈족 등과 더불어 공격하는 한편, 중국으로부터의 망명자를 받아들이며 은밀히 돌궐과의 연결을 꾀하고자 했다. 수의 양제는 수레·배 등의 군수물자를 대규모로 제작하는 등 전쟁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612년에 수륙양면작전으로 고구려 침공을 개시하였다. 이때 24군 가운데 11개 군이 이 수로군 편제이다. 동원된 병력은 모두 113만 3,800명, 군량운반자의 수는 정규군의 배가 되었으며, 군대를 출발시키는 데에도 40일이 소요되었다. 요동성 전투에서 교착상태에 빠진 수양제는 우중문 · 우문술 등을 지휘관으로 한 30만 5,000명의 별동대를 편성하여 오골성(지금의 봉황성)을 경유, 압록강을 건너 고구려의 국도인 평양성으로 직공하게 하였다. 한편 해군은 황해를 건너 상륙작전에 성공한 다음에 패수(지금의 대동강)를 거슬러 올라가 평양성을 공격하게 하였다. 수륙양면작전으로 평양성을 협공하려는 전략이다. 그러나 래호아가 이끄는 수군은 왕제인 고건무가 지휘하는 고구려 군대에 의하여 궤멸되었다. 육군의 별동대는 고전하면서도 을지문덕의 유인작전에 걸려 평양성 30리 지점에까지 진군하였다. 그러다가 지휘부 내부의 불화, 물자부족 등으로 수군은 전력이 약화되었다. 을지문덕은 때를 기다리다가 거짓항복을 청함으로써 수군이 퇴각할 구실을 만들어 준 다음에 본격적인 공격을 개시하였다. 퇴각하는 수군이 살수를 건너고 있을 때 집중적으로 배후공격을 하여 대대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이때 요동성까지 살아간 병력은 겨우 2,700명에 불과하였다고 한다. 3. 결과 살수대첩으로 인하여 전쟁은 고구려의 대승리로 끝이 났다. 수나라는 그후 613년과 614년에 거듭해서 대군으로 고구려를 침공하였지만 모두 실패하였고, 오히려 이로 말미암아 수 내부의 동요가 일어나 종말을 재촉하고 말았다. 한편 고구려는 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국제사회에서의 위치를 신장시켰으나 많은 국력을 소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