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박일권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삼국시대 초까지도 무당의 지위는 지도적 위치에 있었습니다. 『삼국사기』를 보면 신라의 제2대 왕 남해차차웅을 자충(慈充)이라고도 불렀는데, 이는 당시 존경받는 무당이란 뜻이라고 적고 있습니다다. 당시 사람들이 귀신을 위하고 제사를 숭상하는 무당을 경외하여 존장자의 의미인 자충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또한, 남해왕 3년에 박혁거세의 묘를 세우고 제사를 지냈는데, 왕의 누이동생 아로(阿老)로 하여금 주관하게 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삼국시대에 무당들은 질병 치료, 점복과 예언, 각종 의례 집행 등의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개인적·사회적인 역할뿐만 아니라 국가 차원의 일도 수행했습니다. 국가의 앞날을 예언한다든가, 기후와 농사의 풍흉을 점치고, 재난의 예방 및 퇴치 방법을 제시함으로써 국가 및 사회를 유지하고 번영시키기 위한 종교적인 방도를 제공했습니다. 당시에는 무당이 국정을 보좌하고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