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 군사정변시 국군의 몇 % 찬성을 얻었나요? 그리고 누설 위험은 없었나요?
박정희 대통령 업적의 순기능과 역기능이 다양합니다. 군부 실세가 아니었는데도 혁명을 한 거 보면 결단력이 대단합니다. 전쟁이 불과 10년도 안 되었는데 어떻게 가능했죠? 국군의 몇 % 찬성을 얻었고 누설 위험은 없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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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의 답변이 있어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선 5 16은 군사 혁명이 아니라 정변 혹은 구데타 입니다. 5·16 군사정변(May 16 coup)은 1961년 5월 15일 저녁부터 1961년 5월18일 정오 무렵까지 서울, 부산, 대전, 광주, 김포, 인천, 포천 등에서 일어난 군사 정변을 말하는데 주체는 서울을 관할하는 제6관구의 전 사령관이었던 박정희 당시 소장이었으며 십수 명의 장성 및 수십 명의 영관급 장교들과의 사전 회의를 거쳐 군정을 수립하였습니다. 마치 전두환의 하나회 처럼 박정희 수하에도 그를 따라는 영관급 부하들 위주로 반라을 도모 해서 정권을 잡게 된 것 입니다. 당시 지지율을 물어 보는 것 자체는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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