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병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882년 문과 증광시에 최연소 합격한 후 21살이던 1884년 갑신정변을 일으켰지만
실패하여 일본으로 망명했다가, 다시 미국으로 망명합니다.
갑신정변 실패로 가족 친지들은 멸문지화를 당합니다.
미국에서 주경야독하며 대학 진학을 하고 의대 강사가 되었으나 의사로 개업합니다.
조선에 입국하여 독립신문을 창간하고 독립협회를 창립하여 근대화 운동을 전개합니다.
의회설립과 입헌군주제를 주장하면서 고종의 반대로 다시 미국으로 돌아갑니다.
일제강점기에는 미국에서 언론 활동으로 3.1운동을 지원합니다.
해방 후 미군정의 고문 자격으로 한국에 돌아와서 대통령 제의를 받기도 하였지만
미국 국적 때문에 출마하지 못합니다.
갑신정변 실패로 집안이 멸문당하는 상황에서 미국 시민권자가 되어야만 했던
그가 그럼에도 조선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인물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세상에 불쌍한 인생이 조선 여편네다. 여편네가 사내보다 조금도 낮은 인생이 아닌데 사내들이
천대하는 까닭은 사내들이 개화되지 않는 데 있다.” 1896년 4월 21일 독립신문 논설.
“일본은 한국에 가한 잘못을 교화하게 은폐하고 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미국에 알려
미국으로 하여금 한국의 독립을 지지하게 만들어야 한다.” 1919년 4월호 코리아 평론 논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