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기 문신 맹사성이란 인물은 어떤 생활을 했길래 청렴한 관리의 대표주자가 되었나요?
조선 초기의 문신 맹사성이란 인물은 황희 정승과 더불어 청백리라고 불렸는데요. 어떤 생활을 했길래 청렴한 관리의 대표주자가 되었나요?
55글자 더 채워주세요.
2개의 답변이 있어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구려 말, 조선 초의 정치가로 자는 성지, 호는 고불, 시호는 문정입니다. 본관은 온양이며 전교부령 맹희도의 아들입니다.
고려 최영의 손서로 효성이 지극했고 권근에게 배우고 고려 우왕때에 문과에 장원 급제, 헌납, 중서사인을 거쳐 조선시대 대사헌이 되었습니다.
세종 때에 우의정, 좌의정 역임, 태종실록 편찬, 영의정 황희와 여진 지방 개척을 위해 김종서를 시켜 종성, 회령, 경원, 경흥 4진을 설치케도 했으며 청렴 결백해 국가에서 주는 녹미만으로 생활하고 거처는 평민의 집과 다를데가 없었습니다.
말년에 음률을 좋아해 고불과 같은 여생을 보내고 자연을 구가한 시조 작품 외에 많은 일화를 남겼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청백리로 이름이 높은 명재상 맹사성은 1386년에 문과에 급제하면서 여러 벼슬을 지냈다고 합니다. 나중에는 우의정과 좌의정에 올랐는데, <태종실록>을 엮는 일을 감독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선조의 명재상으로 먼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청백리의 표본으로 받들어지는 두 위인은 황희와 맹사성 입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