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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4.01

'무정'을 지은 이광수 작가는 정말 친일파인가요?

독립운동가로 알고있었던 이광수 작가가 정말 친일파인가요?

그렇다면 그는 어떠한 잘못들을 했던 것인가요?

소설 무정 은 참 재밌게 읽었었는데;;충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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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10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이광수의 친일의식이 담긴 내용이 여기에있습니다.

    <창씨개명(創氏改名)에 대해>

    내가 향산(香山)이라고 씨를 창설하고 광랑이라고 일본적인 명으로 개한 동기는 황송한 말씀이나 천황어명(天皇御命)과 독법(讀法)을 같이하는 씨명을 가지자는 것이다. 나는 깊이깊이 내 자손과 조선 민족의 장래를 고려한 끝에 이리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굳은 신념에 도달한 까닭이다. 나는 천황의 신민(臣民)이다. 내 자손도 천황의 신민으로 살 것이다. 이광수라는 씨명으로도 천황의 신민다웁다고 나는 믿기 때문이다.

    <내선일체>

    내선일체를 국가가 조선인에게 허하였다. 이에 내선일체 운동을 할 자는 기실 조선이었다. 조선인이 內地人과 차별없이 될 것밖에 바랄 것이 무엇이 있는가. 따라서 차별의 제거를 위하여서 온갖 노력을 할 것밖에 더 중대하고 긴급한 일이 어디 또 있는가.

    이런 대목을 보아 이광수는 친일파였음을 알 수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소설가 외에도 시인, 동아일보 및 독립신문 편집국장, 조선일보 부사장 등을 역임하였다.

    대표작으로는 <무정>과 <단종애사>, <흙>, <마의태자> 등이 있다. 한때는 2.8 독립 선언서를 작성하는 등 민족 계몽가로 활동했으나 이후 일본 제국 합리화 노선으로 전향하였다. 이에 대해서 그를 대표적인 타협적 민족주의자로 보며 급진적 독립 노선을 포기하고 외적으로는 일본에 협조하는 것과 함께 내적으로 자신을 계발하여 조선인의 권리를 얻어내어 선진화되자고 주장하였다는 시각에 따라 '매국형 친일파'는 아니며 친일파 항목에 서술된 '개화형 친일파'에 가깝게 보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이광수는 그중에서도 '광신적 친일파'로 꼽히기에 그러한 시각은 설득력이 낮다.

    단적으로 개화형 친일파가 매국노 소리를 안 들었던 것은 일본의 목적이 한일병합에 있다는 것을 대놓고 드러내지 않았던 시기 정도이고 이후에는 이걸 받아들이냐 거부하느냐로 확연히 갈라진다. 가장 대표적으로 유길준은 한일병합 이전에는 일본 유학도 다녀왔으며 을미개혁 등에 적극적인 찬성을 띄웠으나 한일병합 직후 받은 작위를 버리며 개발에 필요한 일제의 경제적인 도움을 포기했다.

    식민지 근대화론이라도 추종하면 모를까 정통 역사학계에서는 이광수가 활동했던 시기에 정말로 한반도 독립을 바라면서 자치론을 주장한 인물들이 존재하기는 했는지에 대해서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 때문에 한국 문학, 특히 현대 문학에 있어서는 지대한 공을 세웠다 치더라도 친일 행적에 의해 그 대부분의 공이 과에 덮인 경우라 보아야 하겠다.

    출처: 나무위키 이광수


  • 예리한밀잠자리144
    예리한밀잠자리14423.04.02

    안녕하세요. 김수희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원래는 애국지사였던 분들이 친일을 하게 된다는게....

    하지만..탓할 수 만은 없다고 생각해요...

    일제시대에 끝까지 애국을 한다는것이 정말 힘든 일이니까요...

    그래서 김구 등과 같이.. 끝까지 애국을 하신 분들을 훌륭하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이건 다음 사전에서 찾은 이광수에 대한 평가입니다.

    이광수는 개화·식민지 시대의 선구적인 작가이자 지식인으로서 한국 근대문학사와 정신사 전개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그의 계몽주의 문학과 사상은 여러 가지 한계와 미숙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근대적이던 당대 사회관습을 개선하는 데 도움을 주었고, 그의 문학이론과 소설도 기존의 낡은 문학유산을 극복하는 데 이바지했다. 그러나 바른 역사의식이 결여되었기 때문에 친일의 과오를 범했고, 한편으로 그가 가지고 있는 사상의 관념성과 단편성으로 대중에 대하여 사고의 합리화를 저해한 점도 없지 않다. 그외 소설집으로 〈개척자〉(1922)·〈마의태자〉(1928)·〈혁명가의 아내〉(1946) 등과 수필집으로 〈금강산유기〉(1924)·〈인생의 향기〉(1936)·〈반도강산〉(1939) 등이 있다.


  • 안녕하세요. 김보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광수는 친일파가 맞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독립운동을 하긴했지만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서

    이제는 일제 시대에 우리나라는 독립하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일제에 충성을 하자고 해서 변절을 하게 되어서 친일이 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광수 작가는 처음에는 독립 운동에 가담한 애국자 였습니다. 다만 여러가지 가정사를 겪으면서 변절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의 친일 행적은 우선 조선의 학생들을 일제의 군대가 입대해서 전쟁에 나가서 싸우라는 <내선일체> 문학을 쓰게 되고 본인 스스로도 천왕의 신민이라고 주장하며 창씨 개명을 하며 기타 친일 적인 작품을 많이 쓰게 된다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천지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무정’ 이라는 책은 학교 다닐적에 한번쯤은 읽어 보았을 것이고, 학교를 다니면서 무정 이광수 작가에 대해서 배우기도 했지요.

    무정을 지은 이광수 작가는 조선 근대 3대 천재라고 불리었지만, 친일파로 변절해 우리 민족에게 크나 큰 아픔을 준 인물이기도 합니다.

    이광수 작가가 처음부터 친일파 행동을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이유는 임시정부에도 참여할 정도로 독립운동에 앞장 섰기 때문이지요. 이러한 그가 친일파로 변절한 이유는 임시정부가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하자 국내에 돌아와 자치론을 주장 하면서 일본의 통치를 인정하는 뉘앙스를 풍기기 시작합니다. 결국은 1930년대 후반부터는 본격적으로 친일의 길을 걸었고, 이런 그의 행적 때문에 그는 반민특위가 출범하고 구속되는 치욕을 겪기도 합니다.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춘원 이광수가 2.8 독립 선언서를 작성하고 임시정부에 참여 및 독립신문 발행에 힘쓴 것은 맞습니다만 후일 변질되어 친일파가 되었습니다.



    문학적으로 볼때 한국 현대 문학에 큰 공을 세운 인물은 맞지만 동시에 친일 행적 때문에 명예가 실추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정광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광수 작가는 일제강점기와 그 이후에 활동한 문학가 중 하나입니다. 이광수 작가는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의 통제 아래에서 활동하다가, 광복 이후에는 북한에서 문학 활동을 하였으며, 그 후에는 남한으로 건너와 활동하였습니다.


    이광수 작가가 친일파였다는 주장은 그의 일제강점기와 광복 이후에 대한 활동에서 비롯됩니다. 이광수 작가는 일제강점기에 일본 출판사에서 출판한 작품들이 있었고, 그 당시에는 일본의 통제 아래에서 활동하였습니다. 그러나 이후에는 독립운동에 참여하여 일본과의 접촉을 줄이고, 광복 이후에는 북한에서 활동하면서 북한의 문학적인 방향성과 일치하는 작품을 썼습니다.


    하지만, 이광수 작가의 정치적인 성향이나 태도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이 나뉘고 있습니다. 그의 작품에 대해서도 친일적인 내용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다는 지적이 있지만, 그의 작품은 대체로 인간의 삶과 사랑, 자연 등에 대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이광수 작가가 정확히 어떤 입장을 가졌는지를 평가하는 것은 쉽지 않으며, 다양한 견해가 존재합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광수작가는 일제강점기의 소설가 이자 친일반민족행위자입니다.

    한때 2.8독립선언서를 작성하는 등 민족 계몽가로 활동했으나 이후 일본제국 합리화 노선으로 전향합니다.

    1922년 5월 월간 잡지 개벽에 민족개조론을 발표함으로 사실상 친일파로 접어들었는데 민족 개조론에서 조선은 열악한 민족성으로 인해 쇠퇴 또 쇠퇴 라고 하며 그 구제의 길은 오직 민족개조운동에 있을 뿐임을 강조했습니다.

    1939년 친일 어용 단체인 조선 문인 협회 회장을 맡으며 스스로 가야마 미쓰로 라는 이름으로 창씨개명을 하고 전국을 돌며 강연하며 일제의 학도병으로 나갈것을 독려하기도 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조형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광수 작가는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이광수 작가는 일제 강점기에 일본의 식민지로서 한국을 지배하던 일본의 통치에 협력하고 지원하는 행위(내선일체, 일본 천왕폐하의 성업을 위해 등 일제 찬양하는 글을 103편 썼습니다.)를 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