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로스는 어떤 인물이었나요?
안녕하세요.
알렉산드로스는 어떤 인물이었나요?
알렉산드로스의 성장배경과 살아온 과정 그리고 업적은 어떤것이 있나요???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북부 그리스에는 필리포스 2세 왕이 수도로 정했던 마케도니아(Macedonia)가 있었다. BC 356년에 마케도니아에서 태어난 알렉산드로스(Alexandros the Great, BC 356~BC 323; 알랙산더 대왕)는 말년의 11년을 제외하고는 어린 시절을 그곳에서 보냈다. BC 336년, 46세의 필리포스는 그의 연인으로 추정되는 호위병에 의해 피살되고 20세였던 그의 아들 알렉산드로스가 왕위를 계승한다. 직업 군인으로 성장한 알렉산드로스는 왕위를 계승하고 그리스 지역의 각 국가들을 평정한 후 그 연합체인 코린트 동맹(Corinth League)의 맹주가 되었다.
부왕인 필리포스는 에게 해 건너편에 있는 페르시아를 공략하는 것이 평생의 목표였다. 알렉산드로스는 아버지가 이루지 못한 꿈을 이어받아 정복 원정을 시작하게 된다. 오늘날의 터키에서 파키스탄까지 걸쳐 있던 페르시아 제국으로부터 그리스의 도시들을 되찾으려던 야망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알렉산드로스의 스승 아리스토텔레스가 끼친 영향도 알렉산드로스의 원정에 한몫을 했다고 한다. 당시 페르시아는 가장 땅이 넓고 힘이 센 나라로 거의 100년 동안 그리스를 침공한 일이 있었다.
20세(BC 334)인 알렉산드로스는 6천여 명의 기병과 4만 3천 명의 보병을 이끌고 헬레스폰토스(Hellespont, 오늘날의 다르다넬스, Dardanelles) 해협을 건너 소아시아 원정에 나서게 된다. 알렉산드로스는 해협을 건너 20일 만에 트로이(Troy)에 다다랐다. 그곳의 그라니쿠스(Cranicus) 강가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승리하여 빼앗겼던 그리스의 도시들은 되찾게 된다. 또한 BC 333년에는 소아시아 동남쪽의 이소스(Issus)에서 페르시아 정예군과 맞붙어 크게 승리하였고, 그 후 바빌론을 거쳐 마침내 페르시아의 수도 페르세폴리스(Pcrsepolis)에 도달하였다.
한편 패배한 페르시아군이 내륙으로 퇴각하는 동안 알렉산드로스 원정군은 계속 진군하여 에페소스, 마그네시아, 프리에네도 등을 해방시킨다. 뿐만 아니라 페르시아에 점령당해 있던 이집트도 해방시키고 국민들로부터 대대적인 환영을 받는다. 그 후 알렉산드로스는 점령지마다 알렉산드리아를 세우는데 오늘날까지 번성하고 있는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도 그때 건설한 것이다. 이 도시는 훗날 유클리드(Euclid), 에라토스테네스(Eratosthenes), 프톨레마이오스(Ptolemaeus) 등 많은 학자들을 배출한 곳으로 유명하다.여러 전투에서 승리한 알렉산드로스는 BC 327년 봄, 7만 5천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힌두쿠시 산맥을 넘어 인도 정복 길에 올랐다. 그는 인도가 지구의 동쪽 끝이라고 생각하였지만 그 너머에 더 큰 땅이 있다는 것을 알고 많이 놀랐다고 한다. 계속되는 굶주림과 찌는 듯한 더위와 장마, 그리고 전염병(열병) 등으로 알렉산드로스의 병사들이 하나둘씩 죽어가자 알렉산드로스는 어쩔 수 없이 수도인 페르세폴리스로 발길을 돌리고 말았다(BC 324).
알렉산드로스의 도전 열기는 1년 뒤 지구의 서쪽 끝이라고 믿었던 아라비아를 탐험하려고 계획을 세우게 된다. 하지만 알렉산드로스 자신에게도 운명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다시 원정을 준비하던 그는 BC 323년 6월 33살의 젊은 나이로 바빌론에서 생애를 마치고 만다. 알렉산드로스의 죽음과 함께 새 시대가 도래하였다. 그리스의 언어와 문화를 동방의 곳곳에 전파한 헬레니즘 시대(BC 323~BC 31)가 그가 죽은 해부터 로마에 의해 멸망당한 BC 31년까지 지속되었다.
알렉산드로스는 지중해를 중심으로 펼쳐진 그리스 문화를 벗어나 11년 동안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대륙에 걸쳐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알렉산드로스의 동방 원정은 세계 역사상 육로를 통한 최초의 탐험(정복)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곳곳에 세운 알렉산드리아들을 이어준 도로망과 화폐들을 통해 문화, 교통, 상업 분야에서 놀라운 교류와 큰 발전을 이루었다. 전 세계를 한나라로 생각한 알렉산드로스는 전 세계를 통일하려고 한 것이다. 즉, 모든 나라를 하나로 묶는 제국을 세우려고 한 것이다. 만약 알렉산드로스가 일찍 죽지 않고 30~40년 정도 더 생존 했다면 세계의 역사가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하다.[네이버 지식백과] 알렉산드로스 - 70개의 알렉산드리아를 세운 30대 청년 (대단한 지구여행, 2011. 8. 1., 윤경철)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신현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알렉산더를 말씀하는 것일까요? 마케도니아의 왕인 알렉산더 대왕은 매우 짧은 기간에 지중해 동부, 이집트, 중동 및 아시아 일부를 정복한 것으로 매우 유명한 역사적 인물입니다. 그의 제국은 정복한 땅에 많은 주요 문화적 변화를 가져왔고 지역 역사의 흐름을 바꿨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페르시아 자치령 전체를 정복하여 제국을 인도로까지 확장하는 등, 고대 역사에서 다른 어떤 군사적인 지도자보다도 더 많은 업적을 이룬 왕입니다. 알렉산더는 고대 역사상 가장 성공한 군인이자 제왕으로 인정받았는데요, 하지만 그의 통치는 매우 잔혹하고 폭군적이었으며 야심적이었고, 자신을 신으로 여기기도 했습니다. 그 정복으로 인해 지중해 국가와 페르시아 제국 및 일부 인도 지역은 헬레니즘 문화의 영향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것을 단 32년만에 성취한 유례 없는 군사 지도자입니다.
알렉산더의 제국은 왕 사망 당시 약 520만 제곱킬로미터에 이르는 광대한 영역을 가진 당대 최대 국가였습니다. 아시아 여러 지역은 마케도니아의 지배를 받게 되었고, 이 지역 중 많은 나라가 다음 세기로 넘어가서는 그리스의 통치를 받게 되었습니다. 알렉산더 제국은 동서 지역간의 교류와 무역을 크게 증진시켰고, 알렉산더의 이름을 딴 수많은 도시가 세워졌으며,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고대 서쪽 문화적 중심지인 알렉산드리아였습니다.
알렉산더와 그의 업적은 당시 유럽 전체와 로마 통치자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로부터 찬사를 받았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은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으로 간주되며, 그의 군사 전략은 현재까지 전해져 내려오고 있으며 그는 역사상 가장 뛰어난 장군 중 한 명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그리스인들의 왕 알렉산드로스 1세은 1917년에서 1920년 사이에 군림한 그리스 왕국의 왕이다. 1917년 콘스탄티노스 1세는 국무 총리 베니젤로스와 외교 정책 문제로 갈등을 빚었고 왕세자 요르요스 2세와 망명했다.
차남인 알렉산드로스가 왕위를 물려받았으나 정치적인 실권은 여전히 베니젤로스에게 있었다. 1919년 11월 4일 그는 파나리오테스 출신의 아스파시아 마노스와 결혼했고, 자신들의 결혼이 합법적임을 인정받고 나서야 그리스로 돌아왔다. 그는 1920년 산책 도중에 애완용 원숭이 두 마리에 물려 생긴 패혈증에 의한 감염으로 아테네에서 죽었다. 그의 사후 아버지 콘스탄티노스 1세가 다시 국왕으로 즉위했다.
-출처: 위키백과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