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검색 이미지
역사 이미지
역사학문
역사 이미지
역사학문
rogermaan
rogermaan23.07.14

임진왜란 3대 대첩인 연안대첩은 어디에서 일어난 것인가요

임진왜란 중 육지에서 벌어진 3대 대첩으로 진주대첩 연안대첩 행주대첩 있는데요 진주와 행주는 잘 알려져 있는 것 같은데 연안대첩은 어디에서 일어난 대첩인지 궁금합니다

55글자 더 채워주세요.
답변의 개수6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7.14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연안대첩은 임진왜란 중인 1592년 10월 3일부터 10월 6일까지 황해도 연안에서 이정암이 이끈 의병이 일본군을 패퇴시킨 전투입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임진왜란 때인 1592년 8월 28일부터 9월 2일에 걸쳐 초토사 이정암이 의병을 이끌고 연안성에서 구로다의 왜군과 싸운 전투 입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연안 대첩이라는 것은 조선과 일본군이 연안성을 방어 하기 위한 전투 였는데 그 위치는 북한 황해남도 연안군 연안읍에 있는 조선전기 에 축조된 석축 성곽을 말합니다. 지금은 북한의 국보 문화유물 제86호로 지정 되서 보존 되고 있다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임진왜란 때인 1592년 8월 28일부터 9월 2일에 걸쳐 초토사(招討使) 이정암(李廷馣)이 의병을 이끌고 연안성(延安城)에서 구로다(黑田長政)의 왜군과 싸운 전투.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이정암은 이조참의로 재직하였다.


    선조가 파천을 단행하자 뒤늦게 그 사실을 알고 왕을 뒤쫓아 개성에 도착하였다. 그는 이미 해직된 터라 개성유수(開城留守)로 있는 아우 이정형(李廷馨)과 함께 개성을 지키려 하였다. 그러나 임진강의 방어선이 무너져 개성을 지킬 수 없음을 알고 황해도 연안으로 들어갔다.


    부사로 있을 때 쌓은 정이 있어 부민(府民)들이 모여들었고, 조종남(趙宗男) 이하 수십 명이 의병을 일으킬 것을 권하였다. 이정암은 권고를 즉각 받아들여 약서책(約誓冊)에 의병자원자의 성명을 적고, 1592년 8월 초순경에는 의병 조직을 끝냈다.


    왕세자로부터 초토사로 임명된 이정암은 의병 약속(義兵約束)으로 8개 항을 제시하였다. ① 적진에 임하여 패하여 물러가는 자는 참수한다. ② 민간에게 폐를 끼치는 자는 참수한다. ③ 주장(主將)의 일시의 명령이라도 어기는 자는 참수한다. ④ 군기를 누설한 자는 참수한다. ⑤ 처음에 약속했다가 후에 가서 배반하는 자는 참수한다. ⑥ 논상할 때 적을 사살한 것을 으뜸으로 하고 목을 베는 것을 그 다음으로 한다. ⑦ 적의 재물을 얻은 것은 모두 상금으로 준다. ⑧ 남의 공을 빼앗은 자는 비록 공이 있다 해도 상을 주지 않는다. 이렇게 이정암은 연안성을 사수할 것을 결의하고 500여 명의 의병을 조련(操鍊)시켰다.


    8월 22일 입성할 때 성 안의 민가는 모두 비어 있었다. 그러나 성을 지킨다는 소식을 듣고 피란 갔던 사람들이 속속 돌아오고 도망했던 부사도 돌아왔다. 그러나 입성한 지 채 5일이 안 되어 해주에 본거지를 두었던 일본장군 구로다가 5,000∼6,000명의 군대를 이끌고 침입하였다. 8월27일부터 9월2일까지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진 끝에 일본군은 크게 패해 무수한 인명 피해, 병기·군량 등의 손실을 보았다.


    초토사 이정암은 전투 경과를 보고하는 대신에, 단지 “모일(某日)에 성을 포위했다가 모일에 풀고 갔다[某日圍城某日解去]”라는 여덟 글자만 행재소에 전하였다. 그러나 사실이 곧 알려져 초토사 이하 유공장병은 상직(賞職)을 받고, 이정암은 본도 순찰사에 임명되었다.


    연안대첩으로 연안 이북 연해 10여 읍의 떠돌던 백성들이 집으로 돌아가고, 도피한 수령들도 본읍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더욱이 단절되었던 충청도와 전라도의 사람과 물자가 연안성을 통해 행재소와 내왕할 수 있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연안대첩이 일어난 연안산성은 현재는 북한 황해남도 연안군 연안읍 봉세산에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임진왜란 3대 대첩인 연안대첩은 조선과 일본의 해상 전투로 1592년 8월 14일에 남해안에서 일어났습니다. 이 전투를 승리로 이끈 이순신 장군은 거북선을 이용하여 일본의 수백 척의 전함을 격파하고, 일본의 조선 침략 계획을 크게 저지하게 되었습니다.

    연안대첩에서의 승리는 역사적인 승리로 임진왜란에서 가장 중요한 전투 중 하나로 평가되며, 이순신 장군의 뛰어난 지도력과 거북선의 혁신적인 설계가 전투의 성공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평가되고 있습니다.

    제 답변이 질문자님께 도움이 되셨길 빕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