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수도인 웅진이 방어 상의 장점은 있으나 너무 협소 하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영역의 확장과 지배층의 증가로 인해 백제는 보다 넓은 도읍이 필요했고 그런 의미에서 사비는 백마강과 산맥이 넓게 둘러싸고 있어 방어에 적합했으며 남쪽으로는 평야가 펼쳐져 있어 수도로서 기능하기에도 유리했고 또한 백마강을 통한 서해로의 진출도 용이한 곳이었기때문이었습니다.
백제의 국호는 삼국사기와 수서의 설명가운데 어느 쪽이 맞는지는 아직 가려내기 어렵습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성왕 16년(538년)에 웅진에서 사비로 천도하며 국호를 남부여로 바꿉니다. 신라와 동맹을 맺고 고구려를 협공하여 한강 유역을 일시적으로 되찾았으나 신라의 배신으로 한강유역을 다시 빼았기고 맙니다. 결국 성왕은 관산성에서 사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