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성공적으로 이끌면서 조선보다 더 급격한 발전을 경험 합니다. 전국이 약 270여 개로 나뉘어 진 번(우리의성)은 각각이 국가적 역할을 하였습니다. 즉 우리와 같이 중앙 정부적인 통치가 아니라 지방 분권적인 조직으로 막부체제 이후로 각 번의 사이에는 어느 정도의 경쟁 시스템이 있었지만 19세기에 접어들면서 이 경쟁은 급격히 치열해집니다. 생존을 위한 부국강병의 경쟁, 개혁의 경쟁이 시작된 것입니다. 각 번은 군사, 행정조직이 갖춰져 있고 이를 운용할 지식인이 있었습니다. 군사와 상업에 있어서 각 번끼리는 경쟁하는 체제였으므로 이를 위해 인재를 양성하고 생존경쟁을 하였습니다. 이는 훗날 메이지유신이 가능하게 한 기본 동력이 되었습니다. 다른 번보다 앞선 지식과 문물을 받아들이는데 열심이었고 이를 위해서는 네델란드어와 중국어(한문)을 잘하는 인재의 양성은 필수적이었습니다. 따라서 교육과 출판의 양성이 적극 장려 되고 외국문화를 쉽게 받아 들일 수 있었습니다.
조선은 밀본에 문화와 한자 등을 보급했으며 왜구들의 난도을 무마하고자 포구를 열어 무역을 하기도 했지만 일본은 남해안에 침입하여 약탈과 방화 그리고 부녀자겁탈 등의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습니다. 일본이 임진왜란(1592년)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은 포르투칼로부터 조선업과 총포술을 전수받아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