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영이 베이징에서 한 일에 대해 알고싶습니다
이회영이 베이징에서 독립운동을 한건 아는데 정확히 어떤 운동이나 활동을 통하서 한건지 궁금합니다. 재중국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을 제외하고 말씀해주사면 감사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19년 4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상하이(上海)에 수립되었으나 결국 의견의 차이로 상하이를 떠나 베이징(北京)으로 건너갔다. 그해 베이징에 체류하면서 활동을 계속하였다고 합니다.
1924년 4월 20일에 재중국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을 창립하였고 기관지인 정의공보를 비밀리에 발행하였는데, 그 잡지는 현재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베이징 일대에서 큰 파문을 일으킨 강탈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한국인 독립운동가를 사칭한 강도의 출현으로 베이징은 뒤집혔고 범인을 색출하지 못한 상태에서 조선인들에 대한 의심이 계속됐다고 합니다. 조선인들이 거주하는 장소에는 중국 경찰들의 감시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주위 사람들이 이규창 일가를 중국 사람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었습니다. 이회영은 김진익과 그보다 그의 내연녀인 이자경의 존재가 안심이 되지 않아, 그보다 더 안전한 조카 이규봉의 은신처로 보냅니다.
이회영은 아들 이규창에게 "네가 이자경 부인과 인력거를 타고 이규봉 사촌 형네로 가서 이자경 부인을 소개한 다음 당분간 거기서 지내도록 하게 하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자경은 조실하지 못한 행동으로 독립운동가는 물론 한국인 교포들, 중국인들에게도 눈쌀찌푸리게 했고 그는 이를 통제하지 않았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상하이에 임시정부가 수립된 뒤, 이회영은 새로운 독립운동의 방향으로 아나키즘(anarchism)을 채택하고 임시정부라는 형태에 회의적이었던 그는 임시정부보다 '자유연합적 독립운동본부'를 결성하자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임시정부는 수립되었고, 그때부터 이회영은 신채호와 함께 베이징에서 본격적인 무장투쟁을 시작했습니다. 임시정부 요인들 사이의 권력 암투에 실망을 느낀 그는 아나키스트(Anarchist, 무정부주의자) 위주의 독립운동 조직을 한·중·일 항일 공동전선으로 확대 발전시키는 것을 최종 목표로 삼고 1924년에 의열단을 후원해 조선총독부와 일제 요인들의 처단을 시도했고, 1929년에는 김좌진 등과 손잡고 항일 무장독립투쟁의 전선을 넓혀가는 데 애썼는데 비밀결사조직인 '다물단'을 조직해 일본 밀정을 숙청했고, '흑색공포단'을 조직하여 일제를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1931년 9월 만주사변이 발발한 뒤에는 한·중·일 아나키스트 합작으로 항일구국연맹을 조직했다고 합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1907년 2월 귀국한 안창호를 중심으로 4월경 이갑, 전덕기, 양기탁, 이동녕, 신채호 등과 같이 비밀결사 신민회를 조직하고 중앙위원으로 정치, 경제, 교육, 문화 등 각 방면에서 걸쳐 활약했습니다.
만주에 독립운동 근거지를 마련할 것을 협의해 간도용정촌에 서전서숙을 설립, 이상설을 책임자로 하여금 교포 교육에 주력하도록 했으며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릴 만국평화회의에 이상설이 특사로 파견되자 서전서숙의 경영을 위해 여준을 만주로 파견했습니다.
1908년 헤이그에서 돌아온 이상설을 만나기 위해 만주로 찾아가 앞으로의 진로를 협의 한 끝에 국외 활동은 이상설, 국내활동은 자신이 담당하기도 협의하고 귀국합니다.
교육진흥운동이 시급하다 판단해 동지들을 각 학교에 파견해 교육에ㅐ진 진력하도록 하고 자신도 상동청년학원의 학감으로 취임, 교육사업에 진력했으며 1909년 봄 양기탁의 집에서 김구, 이동녕, 주진수, 안태국, 이승훈 등과 비밀리에 신민회간부회의를 소집, 만주에 독립운동기지를 건설할 것을 결의 , 유하현 삼원보를 후보지로 결정했습니다.
1910년 국권이 일제에 의해 강탈 당하자 전가족이 만주로 건너가 황무지를 개간, 독립운동기지 건설에 매진했으며 1911년 교민자치기관으로 경학사를 조직, 1912년 독립군지도양성을 목적으로 신흥강습소를 설립했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회영선생은 베이징에서 이주해온 조선인들을 모아서 동족의식을 고취하고 비밀 결사단체를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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