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미국 하와이를 중심으로 외교를 독립운동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에 대해 논란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미국 하와이에 이주한 사탕수수 노동자들이 힘들게 번 돈으로 독립자금을 마련한 것을 착복했다는 논란과 조선통감부 외교 담당 스티븐스의 친일행위에 응징을 우리 독립투사들의 재판에 참여한다고 했다가 돈이 작다는 이유로 거절했다는 논란 그리고 무엇보다도 해방 후 반민족자처벌특별위원회를 와해시켰다는 문제 등은 많은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 체제를 성립시킨 점과 제헌국회에서 만장밀치로 국회의장이 되어 제헌입법을 한 것이나 대통령에 당선되어 국가의 기틀을 마련하고자 노력한 점 등은 높은 평가를 받습니다. 비록 남한만의 단독선거와 3.15 부정선거로 4.19혁명으로 하야했지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