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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대원군은 왜 통상수교거부정책을 고집하였나요

안녕하세요 고종이 아직 나이가 어려서 흥선대원군이 대신 통치하였는데요 흥선대원군은 왜 통상수교거부정책을 고집하였나요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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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퇴한 사용자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쇄국정책은 흥선대원군 집권기에 문호를 닫고 서양과 통상하지 않았던 대외정책입니다. 다른 나라와 관계를 맺지 않고 문호를 닫아 서로 통상하지 않는 정책을 말합니다. 주로 흥선대원군 집권 시기의 대외정책을 표현하는 개념으로 사용하였으나, 최근에는 통상 수교 거부 정책 또는 통상 거부 정책으로 고쳐서 표현하고 있습니다.

    1860년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의 공격으로 베이징이 함락되고 청나라 함풍제가 피난 간 사실이 알려지면서 조선의 조야에서 위기감이 확산되었다. 영국 · 프랑스와 청나라의 강화를 중재한 러시아가 그 대가로 연해주를 획득하게 되면서 조선은 러시아와 국경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 무렵에 집권한 흥선대원군은 러시아의 위협을 막고자 프랑스 세력을 끌어들이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교섭은 성사되지 않았으며, 러시아의 국경 침범과 통상 요청이 기우였다는 것이 드러나고, 마침 청나라에서 천주교를 탄압하였다는 소식도 전해졌습니다. 여기에 천주교를 금지하여야 한다는 대신들과 유생들의 주장이 이어지자 대원군은 천주교와 자신의 무관함을 과시라도 하듯 천주교를 대대적으로 탄압하였습니다.

    대원군은 병인박해(병인사옥)를 계기로 발생한 병인양요를 물리쳤습니다. 그 후 “바다의 관문을 굳게 지킬 것이며, 외국배는 삼가 통과할 수 없다”라는 비석을 덕진돈대 앞에 세워서 폐관자수의 의지를 내외에 선포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