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학문
해결사1
해결사1
23.08.09

징기스칸은 몽골내 납치혼을 금지시켜놓고 왜 전쟁때 유부녀겁간은 전쟁의 낙이라고 부추겼나요?

징기스칸은 몽골내 납치혼을 금지시켜놓고 왜 전쟁때 유부녀겁간은 전쟁의 락이며 보상이며 즐거움이라고 예찬(?)했는데요,왜 이렇게 두얼굴의 이율배반적이였죠?

55글자 더 채워주세요.
2개의 답변이 있어요!
  • 시간여행자75
    시간여행자75
    23.08.09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동족 내 납치 혼을 금지한 것입니다.

    전쟁 중 적국 점령지에 대한 것은 전사들에게 주는 포상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전투력을 높이기 위해 포상안으로 둔 것입니다.

    당시에는 현재와 같은 윤리의식이 있는 시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현재의 생각으로 판단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당시 중국이나 한민족 고대국가들에서도 전쟁 후 점령하게 되면 포로를 본토로 데리고 와서 노비 등으로 쓰기도 하고 노략질을 하기도 했습니다. 어진 왕 같은 경우 점령지에 그러한 범죄가 일어나지 않도록 조치를 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당시 몽골의 경우에는 전쟁에 승리하게 되면 그러한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것으로 포상을 두어 더 큰 전투력을 고취시키는 방법으로 사용한 것 같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징기스칸인 테무친은 유목민으로 동서제국을 건설한 인물로 잔인한 정복자입니다. 동서제국을 건설했다는 것은 잔인하게 타민족을 진압하고 약탈하고 살생하는 범죄적 행위를 자행한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나라 고려 또한 몽고의 두차례의 침략으로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뤘는지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오죽했으면 부처님의 법력으로 오랑캐를 물리치고자 팔만대장경을 축조했을까 싶습니다. 온 강산이 황폐화되고 인명살상과 부녀자겁탈 그리고 처녀들을 몽고로 압송하는 데에 따라 조혼풍습이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징기스칸의 이런 말은 정복자의 이중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례라고 보여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