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6사태의 발생원인에 대해서는 아직 정확히 규정된 바가 없으며 박정희와 차지철에 대한 김재규의 사감 때문이라는 설, 김재규 자신의 말대로 부마사태의 참혹한 현장을 보고 박정권의 정당성에 회의를 품었기 때문이라는 설, 사건 전날인 25일 아시아협회 주최의 만찬회에서 당시 주한미군 사령관 존 베시 육군참모총장이 한 발언 등을 근거로 미국이 개입했을 것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1979년 10월 26일 중앙정보부장 김재규는 삽교천 행사를 마치고 궁정동안가에 도착해서 술과 음식을 먹던 박정희 전대통령과 차지철 경호실장을 총으로 쏴서 죽이면서 유신의 심장을 쏘았다라고 했지만 당시 보안사령관 전두환에 의해 비밀에 부쳐졌고 김재규는 주군을 배신한 역적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강경파인 차지철의 주장에 온건적이고 합리적인 김재규는 자주 충돌하였고 그때마다 박정희가 차지철을 두둔한 것에 대한 인간적인 배신감도 있었을 것이고 유신을 종식시키려는 인간적인 바램도 작용했을 것이라고 봅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79년 10월 26일 김재규는 박정희 및 차지절 경호 실장등을 총살 하고 본인이 사태를 수습 하고 정권을 잡으려다가 실패 하고 사형을 당하게 됩니다. 그는 사형 집행 전에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라고 했으나 그것이 진실 이였다면 살해 말고도 다른 방법이 있었을 것 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차지절과의 권력 싸움에서 밀려 본인이 직접 대통령이 되고자 했던 것은 아닌가 의심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