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윤지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견훤은 후백제를 세울 당시에는 자신을 신라의 부용 세력이라 칭했으나, 이후 왕권을 강화하고 독자적인 천하관을 구축하면서 중국의 오월과 왜에 사신을 파견하는 등 국제 외교에도 힘을 썼습니다. 그는 오월에 사신을 보내고 책봉을 받았으며, 망해가던 당나라에게 책봉 받았던 신라나 중국과의 조공-책봉 관계는 아오안이었던 후고구려와 고려, 발해에 비해 중국 내에서 정통성이 더 높다고 생각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러나 견훤은 적장자인 신검이 일으킨 정변으로 인해 왕위에서 축출되었으며, 이로 인해 차남을 후계로 내세운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