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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문어80
조용한문어8023.11.01

카노사의 굴욕에 대해서 알려주세요.

카노사의 굴욕에 관한 그림을 봤는데요.

한 국가의 왕이 맨발로 교황을 기다리는 그림과,

맨발로 교황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왕의 그림을 봤는데 어떤 일이 있었던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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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3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0세기 후반 프랑스의 클뤼니수도원을 중심으로 교회의 개혁운동이있었고 이러한 영향을 받아 11세기 이후 교황들도 개혁을 추진합니다. 교황은 사제의 결혼, 성직매매를 금지하고 성직자의 독신생활을 요구, 이 개혁운동에는 세속 군주들로부터 성직자 서임권을 가지고 오는 것도 포함되었습니다.

    1075년 12월 8일 교황 그레고리오 7세가 세속 군주의 서임에 대한 규정을 강화하면서 황제의 주교직 서임을 금지시켰는데 이는 황제의 권한을 위협하는 것이었고, 신성로마제국 교회의 붕괴를 가져오는 것이었습니다. 신성로마제국 황제 하인리히 4세는 보름스에 교회회의를 소집해 그레고리오 7세를 더이상 교황으로 인정할수 없는 가짜 성직자고 선언, 폐위를 결의합니다. 이에 교황은 로마 회의에서 황제 하인리히 4세의 파문과 폐위를 선언함으로 맞대결을 하게 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국왕파는 붕괴, 독일의 주교들과 공작들은 황제의 반대편에 서게 되었고 이제 더이상 보름스의 교회 회의 결과가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며 파문을 당한 황제는 봉건 제후들의 충성을 받을 수 없게 됩니다.

    결국 하인리히 4세는 교황에게 굴복해 항복문서를 보내지만 교황은 황제를 불신, 황제는 자신의 입지가 급속히 불리해지자 북 이탈리아의 카노사성에 체재 중인 교황을 방문하게 됩니다. 추운 겨울 알프스산의 고갯길을 넘어 카노사 성에 도착한 황제는 눈 속에서 맨발로 3일간 서서 굴욕적으로 사면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교황은 독일 제후와 동맹할 수 있는 호기를 놓치게 된 반면, 황제는 사면을 통해 적대적인 세력을 모두 무력화 시킬수 있었고, 실리면에서 황제의 정치적 승리로 평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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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주교를 임명하는 서임권을 두고 황제와 교황 사이에 충돌이 일어났고 결국 하인리히 4세는 교황에게 굴복하여 항복 문서를 보냈지만 교황은 황제를 불신하였습니다. 황제는 자신의 입지가 급속히 불리해지자 북이탈리아의 카노사성에 체제 중인 교황을 방문합니다. 추운 겨울 알프스산의 고갯길을 넘어 카노사 성에 도착한 황제는 눈 속에서 맨발로 3일간 서서 굴욕적으로 사면을 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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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장세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카노사의 굴욕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하인리히 4세와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 사이의 성직서임권 투쟁에서 비롯된 사건입니다.


    카롤루스 대제가 수립한 프랑크 왕국이 분열하면서 바이킹, 이슬람, 마자르족이 침입하여 교회와 수도원은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교회는 약탈과 침입에서 살아남기 위해 군대를 지닌 귀족과 가까워져야 했습니다. 그리하여 제후들은 교회의 재산을 빼앗앗고, 성직자들은 제후의 봉신이 되었습니다.


    한편 신성로마제국의 경우, 황제들이 자신의 권력을 강화해야만 했는데 이때 이용한 것이 성직자입니다. 즉, 성직자를 황제의 봉신으로 삼아 다른 영주들을 견제하고자 하였죠. 더욱이 성직자들은 혼인을 하지 않기 때문에 이들이 죽으면 하사한 영지는 세습되지 않고 황제에게 반환되었습니다.


    그러나 개혁적 성향을 지닌 클뤼니 수도원 출신의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는 교회의 세속화를 두고볼 수 없었습니다. 이에 교황은 세속 군주의 성직자 임명을 금지하였습니다.


    그러자 하인리히 4세는 반발하여 보름스에서 주교들을 소집하고 교황을 거짓 성직자로 규정하며 폐위를 결정했습니다. 교황은 이에 맞서 황제를 파문[가톨릭 교회 공동체에서의 추방]하고 폐위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대립은 제국 내의 황제 반대파를 결집시키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결국 황제는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카노사성에 머물고 있는 교황을 찾아가 눈 덮인 바닥에 맨발로 3일간 서서 교황의 용서를 받았습니다. 이것이 카노사의 굴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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