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명왕은 주로 국방정책을 추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군사력 강화 를 위해 염소수레를 만들었는데, 이건 청나라로부터 염소들을 인수하기 위해서였다고합니다. 또한 목장을 개발해서 가축 양식을 확대했고, 농업생산을 위해 강변에 댐을 지었으며 이렇게 하면서 경제활동을 활성화했다고 합니다.
동명성왕은 고구려 초대 국왕입니다. 원래 동명왕은 부여의 시조인데 고구려가 왕실의 권위를 높이고자 부여의 건국신화를 모방하고 주몽을 동명성왕이라고 불렀습니다. 부여에서 자란 주몽은 원래 활을 잘 쏘아 촉망받던 중 대소 등 금와왕의 일곱아들이 그 재주를 시기하여 죽이려고 하자 화를 피하에 이주하였습니다. 대소의 위협에서 벗어난 주몽은 남쪽으로 이동하여 졸본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졸본의 둘째 딸 소서노와 혼인하여 점차 세력을 확장하였습니다. 기원전 37년 졸본 부여왕의 뒤를 이어 고구려를 건국하였습니다. 고씨로 전해지지만 아버지인 해모수의 성씨에 따라 해씨이며 고구려 태조왕 당시 계루부 고씨가 집권하자 정통성을 위해 시조인 주몽의 성씨를 고씨로 바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