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서노의 아들들은 왜 각자 갈라졌나요?
고구려에서 남하한 소서노와 그의 아들 온조와 비류는 각자 갈라져서 나라를 세우는데 이들이 남하한 세력을 나눈 이유가 무엇이었나요?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소서노는 자기 아들이 주몽에 이어 왕이 될 것이라 생각했으나 주몽이 동부여에 남겨둔 아내 예씨가 탈출, 고구려로 뱃속에 아들 유리까지 대동해서 돌아옵니다.
주몽은 예씨를 왕후로 삼고 유리를 태자로 삼으려 하니 소서노는 이에 반발, 결국 두 사람 사이는 대립관계로 변합니다 .
주몽은 서기 전 19년 4월 유리의 태자 책봉을 강행, 당시 주몽은 건강이 좋지 않았고 자신이 죽으면 예씨와 유리의 처지가 난감해지므로 서둘러 유리를 후계자로 지목하게 됩니다.
5개월 뒤 주몽이 죽자 왕위 계승을 두고 한바탕 소란이 이는데 조정은 양분되었고, 유리와 비류는 용상을 놓고 목숨 건 혈투를 벌여야 하는 상황까지 됩니다. 그때 소서노는 결단을 내리는데, 자기 세력을 이끌고 다른 지역으로 가 새로운 나라를 세우고자 합니다.
큰 아들 비류도 그녀의 뜻에 동조, 어머니의 뜻을 전해들은 비류는 동생 온조에게 말하길, '처음 대왕께서 부여의 난을 피해 이곳으로 도망하여 왔을 때 우리 어머니가 가산을 내주어 나라의 기초를 세우는 위업을 도와주었으니 어머니의 조력과 공로가 많았다. 그러나 대왕께서 돌아가시자 나라가 유리에게로 돌아갔으니 우리가 공연히 여기에 있으면서 쓸데없이 답답하고 우울하게 지내는 것보다 차라리 어머님을 모시고 남쪽으로 가서 살 곳을 선택해 별도로 도읍을 세우는 것이 좋겠다.' 비류의 말을 듣고 온조 역시 망명에 동의 , 소서노는 자신을 따르는 신하, 백성을 이끌고 남쪽으로 대이동하게 됩니다.
졸본에서 여러 강을 건너 남하한 소서노의 무리는 도읍을 건설할 만한 곳을 찾기 위해 두 무리로 흩어지고, 한 무리는 비류와 함께 미추홀, 다른 무리는 온조와 함께 위례에 정착합니다.
이 과정에서 무리가 둘로 나뉜것은 비류와 온조가 정착지에 대한 견해 차이를 보였기 때문으로, 온조는 산과 강으로 둘러싸인 땅인 위례를 택했고, 비류는 바닷가를 선호해 미추홀을 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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