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를 일본에 팔아먹은 대표적인 친일파는 누구인가요
우리나라가 해방이 되고나서도 우리나라 역사에서 친일잔재 청산이 제대로 되지 않건이 가장 큰 문제인거 같습니다. 우리나라를 일본에게 판 대표적인 친일파는 누구인가요?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매국행위자는 다음과 같습니다.
*을사오적, 정미칠적, 경술국적
이완용: 친일반민족행위자 하면 떠오르는 가장 대표적인 인물. 영구까임권을 국민들에게 수여받아서 100년 넘게 지난 지금도 계속 까이고 있다.
이지용
박제순
이근택
권중현
송병준
조중응
고영희
윤덕영
조민희
민병석
이재곤
임선준
*을사삼흉
민영기: 을사조약 체결 당시 탁지부 대신(지금의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냈을 때 을사오적과는 달리 조약체결에 반대했으나 후에 1910년 국권피탈 이후에 일본 정부로부터 남작 작위를 받았고 동양척식주식회사 부총재와 이왕직장관을 지냈다.
이재극
이하영
출처: 나무위키 친일반민족행위자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대표적인 친일파는 이완용입니다.
고종을 협박하여 을사늑약 체결, 서명 주도, 헤이그 특사 사건 후 고종에게 책임을 물어 물러날 것을 강요했고, 일본과 한일병합조약을 맺은 인물입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완용은 워낙 유명해 아실테고 여자 친일파 알려드립니다
연예인 이상의 주목을 끈 친일파가 있다. 사회적 지탄도 받았지만, 그 이상의 관심을 끌었다. 1966년에 배우 김지미가 그를 연기했고, 2012년에 배우 한채아가 그를 연상시키는 배역을 연기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기관지 <독립신문>이 ‘요녀’로 지칭한 배정자가 바로 그다.
김지미 영화인 <요화 배정자>는 요화로 불렀지만, 임시정부 기관지는 요녀로 불렀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의 선언에 따라 대한민국은 임시정부 법통을 계승하고 있고, 임시정부의 기관지는 그를 요녀로 지칭했다.
‘요녀’로 불린 친일파
본명이 배분남인 배정자는 고종 임금이 아버지 흥선대원군을 실각시키고 실질적 군주가 되기 3년 전인 1870년 경남 김해에서 출생했다. 김해 아전 배지홍의 딸인 그는 네 살 때 아버지가 역모죄로 처형되는 바람에 어머니와 함께 도피 생활을 시작했다. 아버지가 역모죄인이 된 것은 흥선대원군과 연줄이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구한말 역사서인 황현의 <매천야록>은 “운현궁 쪽 사람으로 지목되면 풀 베듯 잘라버렸다”고 전한다. 흥선대원군 정권에 대한 정치보복의 광풍 속에서 배정자의 아버지가 역모죄에 걸렸던 것이다.
가족이 역모죄인 되면 나머지 가족은 원칙상 관노비가 돼야 했다. 그의 어머니는 자녀들과 함께 달아났고, 9년 뒤인 1883년 배정자를 경남 양산 통도사에 맡겼다. 승려가 되기 싫었던 13세 소녀 배정자는 1년 뒤 도주해 주점에서 일하다 경남 밀양에서 체포됐다. 관노비가 될 처지에 놓였던 그는 아버지의 지인인 밀양부사 정병하의 도움으로 달아날 수 있게 됐다.
정병하는 일본 상인이자 첩보원인 마쓰노 히코노스케(松尾彦之助)에게 배정자를 부탁했고, 마쓰노는 그를 일본행 선박에 태워줬다. 1885년에 있었던 이 일은 배정자가 갑신정변 망명객인 김옥균을 만나고, 1887년에 김옥균의 소개로 초대 총리대신 이토 히로부미(재임 1885~1888)를 만나는 결과로 이어졌다.
17세 조선 소녀에게 이끌린 이토는 그를 가사도우미 겸 양녀로 삼았다. 다야마 데이코(田山貞子)란 이름도 지어줬다. 데이코란 이름 때문에 그 뒤 그는 한국에서 배정자로 불리게 됐다.
이토는 배정자에게 수영·승마·자전거·사격술·변장술 등을 가르쳤다. 당시에는 신문명인 자전거 운전술까지 가르치며 특수 첩자로 키웠던 것이다. 그 뒤 조선에 투입된 배정자는 조선 왕실을 상대로 스파이 활동을 하며 일제 침략에 앞장섰다. 또 중국·만주·시베리아 등지에서 현지 일본 영사관과 협조해 한국인들의 동향을 정탐하고 독립운동가들을 색출하는 데도 가담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신현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친일파라고 하면 이완용 후착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완용은 일본이 여러 동아시아를 침탈할 당시 일본에 붙어 그들에게 추종하며 대한제국을 무너뜨리는데 일조한 대표적인 친일파중 한명입니다.
현재 한국에는 708명의 친일파 명단이 있다고 하는데요. 프랑스와 비교해 본다면 반민족주의자를 쳐단한 것이 프랑스의 경우 실형15만명 사형은 만명넘게 산고 되었고 실제 사형집행도 3800명 정도였던 것에 반해 한국의 경우 당시 처벌대상이 겨우 7천명이 었으나 실제 기소는 200명가량 실형선고는 7명에 그쳤고 형집행을 0명이라는 충격적 결과에 있습니다. 이는 결국 친일파를 한명도 제대로 숙청하지 못한 것이고 아마 당시 높은 관료들에 친일파가 많았을것이라 추정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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