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인 폭군으로는 충혜왕이 있는데, 연산군은 애교수준이라고 합니다. 이는 공민왕의 형이자 충숙왕의 아들로서 세자시절에는 절 위에 있는 새를 잡는다고 절을 방화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아내를 폭행하는가하면 신하의 아내를 빼앗기도하면서 폐위가 되었습니다. 장인의 후처를 겁탈하는가하면 부왕의 후처도 겁탈하였다고합니다.
고려 28대 충혜왕은 주색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원나라에 의해 폐위된 왕입니다. 25대 충렬왕과 26대 충선왕이 원나라에 의해 왕위를 자주 빼앗겼던 것처럼 아버지인 충숙왕도 원에 의해 왕위를 빼앗겨 양위의 형식을 빌어 충혜왕이 되었습니다. 왕위에 오른 뒤부터 술과 여자를 탐하고 사냥을 즐기는 등 방탕한 생활을 영위하였습니다. 이에 원나라에서는 충혜왕을 폐위시키고 원나라로 불러들이게 됩니다. 원나라에서도 황족과 귀족들과 어울리며 유흥을 즐기며 방탕한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그가 엘테무르의 아들 등과 함께 술을 마시고 여자를 희롱하고 다녀 숙위에도 결근하자 바이안은 그를 두고 무뢰배 건달을 뜻하는 발피라며 비난했습니다. 충혜왕은 왕위가 결정되지도 않았을 때 아버지의 여인인 수비 권씨를 범하고 외삼촌인 홍융의 아내 황씨도 간음하는 등 음란한 짓을 일삼았고 그는 심지어 서모(아버지의 첩)인 백안홀도(경화공주)를 강제로 능욕하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