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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2.01

첨성대는 어떻게 만들어 진건가요?

안녕하세요

우리나라 유명 건축물인 첨성대는 신라시대에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어떤계기로 만들어졌고 누가 만들었는지 그리고 첨성대의 역활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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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4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첨성대는 천체관측을 위해서 선덕여왕 때 만들었다고 합니다.

    첨성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동양 최고(最古)의 천문대’ 첨성대. 신라 제27대 선덕여왕 때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경주를 상징하는 랜드마크 중 하나이다. 받침대 역할을 하는 기단부(基壇部)위에 술병 모양의 원통부(圓筒部)를 올리고 맨 위에 정(井)자형의 정상부(頂上部)를 얹은 모습으로 높이는 약9m이다. 원통부는 부채꼴 모양의 돌로 27단을 쌓아 올렸다. 남동쪽으로 난 창을 중심으로 아래쪽은 막돌로 채워져 있고 위쪽은 정상까지 뚫려서 속이 비어 있다. 동쪽 절반이 판돌로 막혀있는 정상부는 정(井)자 모양으로 맞물린 길다란 석재의 끝이 바깥까지 뚫고 나와있다. 이런 모습은 19∼20단, 25∼26단에서도 발견되는데 내부에서 사다리를 걸치기에 적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옛 기록에 의하면, “사람이 가운데로 해서 올라가게 되어있다”라고 하였는데, 바깥쪽에 사다리를 놓고 창을 통해 안으로 들어간 후 사다리를 이용해 꼭대기까지 올라가 하늘을 관찰했던 것으로 보인다.

    첨성대를 이루는 돌들은 저마다의 의미를 가진다. 위는 둥글고 아래는 네모진 첨성대의 모양은 하늘과 땅을 형상화했다. 첨성대를 만든 365개 내외의 돌은 1년의 날수를 상징하고, 27단의 돌단은 첨성대를 지은 27대 선덕여왕을, 꼭대기 정자석까지 합치면 29단과 30단이 되는 것은 음력 한 달의 날수를 상징한다.
    관측자가 드나들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가운데 창문을 기준으로 위쪽 12단과 아래쪽 12단은 1년 12달, 24절기를 표시한다. 하늘의 움직임을 계산해 농사 시기를 정하고, 나라의 길흉을 점치는 용도로도 첨성대가 활용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출처: https://korean.visitkorea.or.kr/detail/ms_detail.do?cotid=9d506d09-62ec-40d4-87a2-a0fd35b25b80


  • 시크한오리233
    시크한오리23323.02.02

    안녕하세요. 이예슬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결국 농경사회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천문학은 하늘의 움직임에 따라 농사 시기를 결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농업과 깊은 관계가 있으며, 관측 결과에 따라 국가의 길흉을 점치던 점성술(占星術)이 고대국가에서 중요시되었던 점으로 미루어 보면 정치와도 관련이 깊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일찍부터 국가의 큰 관심사가 되었으며, 이는 첨성대 건립의 좋은 배경이 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pageNo=1_1_2_0&VdkVgwKey=11%2C00310000%2C37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첨성대는 선덕여왕때 지어진 신라시대의 천문대 입니다.

    역사적으로 첨성대는 별을 관찰하는 역할로 지어진 것이나, 천문대가 일종의 기념비, 제단, 창고였을 것이라는 설이 있으며, 종교적 상징물, 과학 수준을 과시하는 상징말, 선덕여왕을 신성화하기위한 도구 등으로 사용했다는 설이 제기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첨성대는 천문을 관측하기 위해서 신라 27대 선덕여왕(632∼647년)때 만들었으며 동양에서 현재 남아있는 천문대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국보 제31호입니다. 첨성대는 높이가 약 9.1m로 전체적인 모습을 살펴보면 밑에서 위로 좁아지는 병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