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옛날에는 왕실의 여자가 남자 대신을 만날 때에는 직접 얼굴을 마주하지 않고 발을 내린 채 만나는 것이 법도였다.
임금을 대신해 왕실의 여자 어른이 정치를 할 때에도 수렴을 치고 임금의 뒤에 앉아 신하들과 나랏일을 의논했다. 이것을 ‘수렴청정’이라고 한다.
수렴청정을 하는 경우는 대부분 나이 어린 세자(태자)가 임금이 되었을 때였다. 임금이 너무 어려 나랏일을 하기 어려울 때 왕대비(왕의 어머니)나 대왕대비(왕의 할머니)가 그를 대신하거나 돕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수렴청정은 여자 왕족이 임시로 임금의 역할을 맡아 하는 것일 뿐, 임금이 성년이 되면 그치도록 되어 있었다.
우리 역사에서 수렴청정이 가장 많았던 때는 조선 시대였다. 조선 왕조 500여 년 동안 모두 8번의 수렴청정이 있었다.
하지만 그 이전 시대에도 수렴청정을 했다는 기록이 전해 온다. 고구려 태조왕 때, 신라 진흥왕과 혜공왕 때, 그리고 고려 헌종, 충목왕, 충정왕, 우왕 때 각각 수렴청정이 있었다.
수렴청정을 한 왕후들 중에는 자신의 친정 세력을 등용해 권세를 누리며 혼란을 불러온 사람도 있었다.
조선의 제11대 임금인 중종의 부인인 문정 왕후는 아들인 명종을 대신하여 수렴청정을 했는데, 이때 친정 세력인 윤씨 가문이 권세를 누리며 부정부패를 일삼고 사화를 일으켰다.
또한 제23대 임금인 순조 이후 고종 때까지 수렴청정이 계속되면서 왕권이 약해지고 왕의 외가인 안동 김씨, 풍양 조씨 등의 가문이 권세를 독점하는 세도 정치가 계속되었다.
출처 : 한국사 사전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