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의 옛 군현으로 기원전 108년 전한의 제7대 세종 무황제 유철이 보낸 한군이 고조선(위만조선)을 상대로 1년간의 치열한 전쟁 끝에 멸망시키고, 설치한 한사군 중 하나이다. 위치는 지금의 대동강 일대로 보는 것이 통설로, 특히 평양 일대에서 많은 유물과 고분이 발굴되었다. 원래는 한나라 출신과 고조선 출신이 구별되었으나 시간이 지나며 그런 구별은 없어진다. 아예 낙랑군 출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다만 낙랑군과 왕검성의 위치는 다르다는 견해도 있다.
낙랑군(樂浪郡, 문화어: 락랑군, 기원전 108년~기원후 313년)은 전한 무제가 위만조선을 점령하고 세운 한사군 중 하나로, 현도군과 함께 최후까지 남은 변군(邊郡)이다. 대략 한반도 북부를 관할하였다. 한나라가 멸망한 후에도 중국의 변군으로 존속하였으며 고구려 미천왕에 의해 축출될 때까지 약 420년에 걸쳐 한반도 및 만주 일대의 민족들과 대립하고 교류하면서 많은 영향을 끼쳤다.
낙랑군(樂浪郡, 기원전 108년~기원후 313년)은 전한 무제가 위만조선을 점령하고 세운 한사군 중 하나로, 현도군과 함께 최후까지 남은 변군(邊郡)이다. 대략 한반도 북부를 관할하였다. 한나라가 멸망한 후에도 중국의 변군으로 존속하였으며 고구려 미천왕에 의해 축출될 때까지 약 420년에 걸쳐 한반도 및 만주 일대의 민족들과 대립하고 교류하면서 많은 영향을 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