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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germaan
rogermaan23.04.26

몽골 황제 징기스칸의 무덤이 발굴이 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몽골 제국을 건국한 징기스칸의 무덤은 아직도 미스테리로 발굴이 되지 않았다고 하더라고요 어떤 역사적 때문에 징기스칸의 무덤은 알려지지 않고 발굴 되지 않은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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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4.26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징기스칸의 무덤의 행방은 묘연하다고 합니다.

    칭기즈 칸의 무덤은 어디에 있는지 미스터리다. 부르한 산 등 여러 후보지가 있지만 전부 확실하지 않다.

    여기에 대해선 좀 으시시한 전설이 하나 있는데, 칭기즈 칸의 무덤을 옮기는 과정에서 마주친 살아있는 모든 것을 몰살시켰다. 그리고 칭기즈 칸의 무덤은 묻은 후 파헤쳐지는 것을 막기 위해 기병대가 수없이 짓밟음으로써, 무덤을 평지로 만들어 아무도 찾을 수 없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돌아온 기수들도 미리 준비해둔 자들에 의해 몰살되었다고 전해진다. 다만 전설일 뿐 확실한건 아니라 학계에서도 실체성 논란이 있다. 부정하는 쪽은 학살자 칭기즈 칸을 미워한 자들이 만든 근거없는 낭설로 보는 편이다.

    화려한 무덤이 아닌 유해를 그의 충복이 소박하게 평범한 몽골식 장례로 치렀다는 말도 있다. 이후 세월이 지나면서 소박했던 무덤이 자연스레 사라지거나 잊혀졌다는 주장이다. 칭기스 칸이 생전에 사치를 싫어하고 유목민의 전통을 지킨 것을 상기하면 이쪽도 상당히 신빙성이 있다. 당시 몽골식 장례는 시신을 말에 실은 후 달려나가서, 말이 지쳐서 멈춰선 곳을 파 돌로 시신 주변을 두르고 묻는 것이었다고 한다. 천하를 제패한 대칸의 장례로는 너무 소박한 것 같지만 몽골인이었던 칭기즈 칸의 장례로 어떤 의미로는 적절하다고도 볼 수 있다.

    아예 칭기즈 칸이 화장이나 풍장 등을 해서 무덤 자체가 없었을 가능성도 있다. 다만 이것도 사서마다 명칭은 다르지만 분명 어떤 곳에 묻긴 묻었다는 기록이 제법 남아있어 참 이도저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여담으로 칭기즈 칸 뿐만 아니라 이후 많은 칸들의 무덤도 칭기즈 칸과 비슷하게 어디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일본이 중일전쟁 시기 무덤을 찾으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일본이 칭기즈 칸의 무덤을 그렇게 찾으려고 했던 이유는, 칭기즈 칸이 일본인(미나모토노 요시츠네)이었다는 일본 내 사이비 역사 속설을 증명(?)하여, 당시 중국 및 몽골 침략을 억지로 정당화하기 위해서였다.[12] 하지만 결국 실패하고 대신 몽골의 고고학 기술이 발전했다고 한다.

    2차대전 이후에도 여러 고고학자들과 트레저헌터가 명예와 부를 위해 힘을 합쳐 칭기즈칸 관련 고서 등을 보고 후보지들을 추려내, 후원금으로 산 최첨단 장비로 조사했으나 누군가 다치거나 발굴 작업 노동자가 죽는 등 을씨년한 일이 제법 벌어지는 바람에 결국 포기하고 철수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칭기즈 칸을 거의 신앙처럼 받드는 상당수 몽골 사람들은 이런저런 외부 간섭이 불편하기도 해서인지 칭기즈 칸의 무덤을 찾는 것 자체를 불길하다고 여겨 꺼리는 분위기도 있는 모양. 더 나아가 이들이 발굴단을 조직적으로 방해했다는 설도 있다. 결국 한 몽골 대통령이 무덤 발굴 및 탐사 금지를 주장하면서 법제화 한 이후, 칭기즈 칸 묘를 찾으려는 고고학자나 트레져헌터들의 활동은 대거 불가 딱지를 먹게 되면서 자취를 감추게 된다.

    냉전이 끝난 1990년대 이후 많은 탐사대들이 몽골 일대를 탐사했다. 특히 유명했던게 모리 크라비츠라는 미국 학자였는데, 2000년대 초반엔 그럴듯한 장소가 발견되어 탐사 작업까지 들어갔지만 결국 전염병 등 이런저런 이유로 탐사를 중지한 바 있다.

    출처: 나무위키 칭기스칸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칭기즈칸의 무덤을 옮기는 과정에서 마주친 살아있는 모든 것을 몰살시켰고 무덤은 묻은 후 파헤쳐지는 것을 막기 위해 기병대가 수없이 짓밟음으로써 무덤을 평지로 만들어 아무도 찾을수 없도록 만들었다는 설이있고

    화려한 무덤이 아닌 유해를 그의 충복이 소박하게 평범한 몽골식 장례로 치렀다는 설로 이후 세월이 지나면서 소박했던 무덤이 자연스럽게 사라지거나 잊혀졌다는 주장입니다.

    또, 아예 화장이나 풍장 등을 해서 무덤 자체가 없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징기스칸의 묘의 위치에 대하여는 네가지 정도로 견해가 나뉘어진다고 합니다 몽골의 컨터산의 남측; 어얼뚜어쓰 초원; 천리산; 알타이산. 아직 발견되지 않은 가장 주요한 이유는 원나라 황가에서 시행했던 비밀매장제도 때문이라고 합니다. 전설에 따르면 칭기즈칸은 죽음에 이르러 자신을 ‘비밀리에 조용히 묻어라’라고 명령했다고 한다고 하지요. 따라서, 그의 시신을 운반하던 천명의 군사들은 마주친 모든 사람들을 죽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의 무덤 위를 1,000마리의 말 발자국으로 지웠다고 합니다. 그로부터 약 800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의 무덤의 위치는 철저한 비밀로 간직 되고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상식적으로 답드리겠습니다.

    일단 칭기스칸이 비밀리에 조용히 묻으라 명했다하고 죽고 무덤을 공사한 군사들의 흔적이 없으며 공사하면서 목격된 사람은 제거했다는 설과

    몽골이 영원히 신비로운 전설로 생각하여 발굴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