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혜공주는 왜 비구니가 되었나요??
단종의 누이인 경혜공주가 비구니가 되었다고 알고 있는데요.
수양대군이 왕위를 차지하고 단종이 죽어서 충격 때문에 비구니가 된건가요?
안녕하세요. 김수희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그녀는 문종의 적통 공주였습니다
다만 남편이 단종 복위를 위해 일하다 거열당해 죽었기에
재산을 몰수당하고
정업원의 비구니가 된 적은 있으나
공주 신분 자체를 박탈당한 적은 없습니다
그리고 세조가 재산 상당 부분 돌려주었고
성종 시기 정희왕후는 정미수-경혜공주 아들-의 과거 응시를 허락하여
정미수는 비교적 잘 먹고 잘 살았으며
단종의 부인 정순왕후를 돌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경혜공주는 비구니가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경혜공주는 문종과 현덕왕후 권씨에게서 난 공주이고 단종임금의 누나 입니다. 한낱 세자 향의 후궁으로 있던 권씨가 그녀를 낳음으로써 왕후의 지위에 오를 수 있었지요. 그녀는 영양위 정종에게 시집을 갔으며 훗날 숙부인 세조임금에게서 동생과 지아비를 잃은 슬픔으로 통탄했고 대신들의 주청에 따라 그녀는 공주의 작위를 박탈당하고 비구니가 되고 말았습니다.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경혜공주의 입장에서 보면 친동생
단종이 왕권을 뺏긴 것만으로도
억울하기 짝이 없는데,
동생은 살해당하고 남편은 역모죄로
능지처참당했으니 삶에 아무런 미련도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살아야한다고 생각한 것은 3살, 1살된 어린 아이들
때문이었다. 어머니로서 어린 자녀들을 두고 죽을 수는 없었으나, 아이들과
같이 궁궐에 가자니 세조와 마주치는게 죽기보다 싫었던 경혜공주는 비구니가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출처: 나무위키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실록에서는 정종이 죽은 후 머리를 깎고 비구니가 되었으며 무척 가난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당시 몹시 가난하여 세조가 노비를 돌려주고 내수사로 하여금 집을 지어주게 했다는 기록이 사관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세조와 정희왕후도 죽은 단종과 노비가 된 경혜공주에 대한 동정 여론을 의식하였기 때문에 그 해에 바로 서울로 불러들였으며, 정희왕후가 공주의 아들 정미수를 궁궐로 데려와 길렀고, 경혜공주는 딸을 출산한 이후 출가하여 비구니가 되었습니다.
경혜공주의 입장에서 보면 친동생 단종이 왕권을 뺏긴 것만으로도 억울하기 짝이 없는데, 동생은 살해당하고 남편은 역모죄로 능지처참당했으니 삶에 아무런 미련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살아야한다고 생각한 것은 3살, 1살된 어린 아이들 때문이었다. 어머니로서 어린 자녀들을 두고 죽을 수는 없었으나, 아이들과 같이 궁궐에 가자니 세조와 마주치는게 죽기보다 싫었던 경혜공주는 비구니가 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원수 소굴이나 다름없던 궁궐에 자식들을 맡긴건 어머니 현덕왕후의 친정노비이며 경혜공주의 유모였던 백어리니의 도움이 컸습니다. 백어리니는 당시에 자을산군의 유모였는데 정희왕후 윤씨와 함께 "자식들을 위해 왕을 용서해야한다"라고 설득했을 거라 추측됩니다. 딸 출산 후 정업원에 출가했고 당시 27살이었습니다.출처: 나무위키 경혜공주
안녕하세요. 강요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수양대군이 집권후 발생한 사육신 사건으로 인해서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강원도 영월로 유배를 떠나고 경혜공주의 남편은 전라도 광주로 귀양을 떠납니다. 동생 단종이 사사되니 그녀의 남편은 4년후에 능지처참을 당하는데 이때 공주의 나이가 27세였고 부모도 잃고 동생도 잃고 남편도 잃은 경혜공주는 내놓을 것이 더 있었으니 바로 공주의 신분이었죠. 연려실기술에 의하면 그녀는 남편이 죽은 뒤에 전라도 순천부의 노비가 되고 당시에 그녀에게는 여섯 살짜리 아들 정미소 와 뱃속에는 딸이 있었다고 합니다. 임신한 상태에 애까지 빨 딸린 공주한테 너무 심하다는 여론을 의식한 수양대군이 그녀를 사면하고 한성으로 불러 올립니다 한성으로 돌아온 공주는 두 아이를 왕궁에 맡기고 자신은 머리를 깎고 비구니가 되어 13년간 사찰에서 여생을 보낸 그녀는 성종이 재위할 때 세상을 떠났는데 그녀의 나이 40세였다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박정욱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경혜공주는 조선 중기의 왕족 출신으로, 정확한 출생 연도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녀의 형인 단종은 1455년에 태어나 1457년에 즉위하여 조선의 8대 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1469년, 단종은 천연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단종의 즉위 시기부터 그가 병으로 약해져갔기 때문에, 그가 사망하게 된 것은 조선의 정치적, 사회적 안정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경혜공주는 이후에 단종의 죽음에 매우 충격을 받았고, 이것이 그녀가 비구니가 된 이유 중 하나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비구니가 된 정확한 이유는 확실하게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안녕하세요. 정광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경혜공주는 비구니가 됨으로써 자신의 삶을 영적 추구에 바치고 백성들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녀는 1895년에 비구니가 되었고 대한불교 조계종의 이름을 따서 "조계"라는 이름을 얻었다. 그녀는 여생 동안 은둔 생활을 하며 명상과 종교 활동에 전념했습니다.비구니가 되기로 한 그녀의 결정은 단순하고 봉사하는 삶을 살기 위해 그녀의 특권과 권력의 지위를 포기하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에 용감하고 이타적인 행동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녀는 한국 역사에서 존경받는 인물로 남아 있으며 사회 정의에 대한 연민과 헌신으로 기억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친동생은 은 억울하게 왕권 다 뺏기고, 남편은 귀양간 상황에서 경혜 공주는 충분히 홧병이 나고도 남을 상황 이였지요. 원래 자살 까지도 하려고 했지만 조용히 마음을 정리하고 비구니가 된 것으로 생각 됩니다. 비운의 공주 였다고 생각 듭니다.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공주는 세종이 재위할 시 세자 이향과 권씨 사이에 태어났고, 아버지가 세자였고 어머니가 세자의 첩이라 그녀는 태어났을때는 공주가 아니였습니다.
당시 세자빈이 낳은 딸은 정2품의 군주, 세자의 첩이 낳은 딸에게는 정3품 현주라는 작위를 수여했는데, 그것도 출생 직후 바로 주는 것이 아니라 보통 7세 이후부터였습니다.
그녀의 시작은 첩의 딸이었지만 3살때 어머니가 세자빈으로 승격됨에 따라 그녀는 세자의 처소인 경복궁 자선당에 살지만 7살때 동생을 낳고 (단종) 죽는 바람에 궁을 떠나게 되고 정2품평창 군주라는 작위를 부여받습니다.
할아버지 세종의 건강이 악화되면서 15세부터 그녀의 삶이 꼬이기 시작하는데 세종의 건강이 호전되지 않자 왕실에서는 혼기가 꽉 찬, 16세 공주의 혼사를 서두르고 세종이 사망할 경우 삼년상 기간에 혼인을 할수 없기 때문입니다.
왕실에서 급히 얻은 배우자는 전 한성부윤 정충경의 아들, 정종으로 세종실록에 의하면 공주와 정종은 세종 32년 1월 24일에 결온했고 당시 16세였습니다.
그러나 살림집을 차리기도 전 세종 32년 2월 17일 세종이 세상을 떠나니, 결혼한지 52일만에 할아버지 왕이 사망해서 살림집 준비는 일단 멈추었고, 살림집을 마련한 것이 세종의 소상이 끝난 뒤 이때부터 경혜공주가 됩니다.
그러나 삼년상이 끝나자 한달 뒤 아버지 문종이 세상을 떠나고 그녀는 세종의 삼년상에 이어 아버지 문종의 삼년상까지 치러야 하니 당시 18세였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삼년상이 끝나기도 전에 숙부 수양대군이 계유정난을 일으키니, 동생인 단종은 허수아비 임금으로 전락하고 그녀의 나이 21세때 수양대군이 임금이 되고 동생은 상왕으로 승격되지만 남편인 정종은 강원도 영월로 귀양을 가게 되는데, 단종을 감싸고 돌았던 금성대군과 친한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그후 정종의 유배지가 수원으로 바뀐뒤 남편과 함께 동행했습니다.
그러나 세조 집권 후 발생한 사육신 사건으로 단종은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강원도 영월로 유배를 떠나고 남편은 전라도 광주로 귀양을 갑니다.
동생 단종이 사사된 뒤, 그녀의 남편은 4년 후 능지처참을 당하고 부모도 잃고 동생도 잃고 남편도 잃게 되었는데 그뒤 그녀는 내놓을 것이 더 있었으니 공주 신분입니다.
연려실기술에 의하면 그녀는 남편이 죽은 뒤 전라도 순천부의 노비가 됩니다.
그녀에게 6세 아들 정미수와 뱃속에 딸이 있었는데 만삭의 몸으로 아들의 손을 잡고 노비가 되어 순천으로 떠나고 임신한 상태에서 애까지 딸린 공주에게 너무 심하다는 여론으로 수양대군이 그녀를 사면하고 한성으로 불러오는데 한성으로 돌아온 공주는 두 아이를 왕궁에 맡기고, 자신은 머리를 깎고 비구니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