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족보는 언제 부터 시작 된건가요?
우리나라에서는 옛날에는 성을 쓰지 않는 풍습이 있었는데 신라말기에 중국의 예를 본받아 귀족계급에서부터 성을 쓰기 시작하였으며, 이것이 고려초기에도 계속되다가 11대 문종조(1047~1082)에 이르러 성을 쓰지 않는 사람은 과거에 응시하지 못하도록 제도화함에 따라 성씨가 갑자기 많이 생겨난 것으로 추측된다고 합니다. 성씨는 써도 족보는 기술하지 않다가 족보를 체계화한 것은 이조 성종조의 초기 때 일이고, 우리나라 최초에 발간된 족보는 세종5년 계묘(서기1423년)의 문화류씨(文化柳氏) 영락보(永樂譜:구월산 대승공묘하 재실에 보존)인데 서문만 전할뿐 현존하지 않고, 그 다음으로 성종7년(서기1476년)에 발간된 안동권씨(安東權氏) 성화보(成化譜)로써 현재 서울대학도서관 규장각에 희귀고본으로 진장되어 있다고 합니다,
족보는 어느 나라나 처음에는 왕가의 계보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른바 「왕대실록」이니 「원록( 源錄)」이니 하여 왕실의 계통 을 기록한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각 씨족의 족보가 발달한 것은 과연 언제부터인가에 대하여는 이를 명백하게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중국의 한나라 시대부터 이것이 시작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많은 것 같습니다. 여러 가지 문헌에 의하면, 후한 이후 중앙 또는 지방에서 대대로 고관을 배출하는 우족(右族)·관족(冠族)이 성립됨에 따라 문벌과 가풍을 중요시 하는 사상이 높아져서, 이때부터 족학이 발달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특히 문벌의 전성기인 위(魏)· 진(晉)·남북조(南北朝)에 있어서는 제가의 족보를 수집 심사한 뒤에 이것을 갑을의 문벌로 구분하여 세족이 아닐 경우에는 높은 벼슬자리에 오르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우리나라의 족보는 고려 때부터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역시 왕실의 계통을 기록한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던 것은 물론입니다. 고려 사회는 문벌귀족의 형성으로 족보가 유행하였고, 신분에 따라 사회활동및 출세의 제한은 말할것도 없고, 문벌이 낮은 가문과는 혼인조차 하지 않기에 이르렀습니다.
조선시대에 와서는 국초(國初) 부터 족보의 편성간행의 필요가 더욱 절실하여 급속히 진전되었습니다. 왕실 자신이 벌족 정치의 국가형태를 취했을 뿐만 아니라 유교(儒敎)를 국시로 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성족(姓族)파별로 가승(家乘)을 명백히 할 필요가 생겨 족보가 없는 집안은 행세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족보가 성행하였고, 그 체제도 현재의 형태와 같이 완성되었습니다. 당시는 원시적 부족사회의 형태와 같은 동족의 집단부락이 각지에 존재하고 있다는 점과 붕당학파(朋黨學派)의 싸움이 치열하여 배타적 관념으로 인해 자연 동당(同黨)· 동파(同派)·동족(同族)의 일치 단결을 공고하게 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안녕하세요. 꾀꼬리입니다.족보라는것은 중국에서 후한대에 만들어진것으로 보이며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부터 제작되었다고는 하나 본격적으로 만들어진것은 16세기를 넘어가면서부터 라고 할수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