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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

결 7호 작전이란 것은 무엇을 말하는 건지 알려주세요

4월입니다.

4월하면 제주도 4.3사건을 떠올리게 되어 알아보던 중 결 7호작전이 나오는데

이는 제주 4.3사건과 어떠한 연관이 있나요?

    5개의 답변이 있어요!

    • 순금킹 시계퀸

      순금킹 시계퀸

      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결7호 작전은 태평양전쟁 말기 일본군이 제주도를 요새화한 사건을 말합니다.


      제주 4.3사건 당시 결 7호 작전으로 만들어진 진지가 이용된 사례있다고 합니다.

      슬픈 역사 입니다


    •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태평양 전쟁 말기 미군의 일본 본토 침공이 임박하자 대본영이 수립한 방어계획인 결호작전의 일부. 일본 본토가 아닌 지역으로는 유일하게 제주도가 포함된 경우를 말합니다.

      1945년 2월 9일, 일본의 방위총사령관은 각 방면군 사령관에게 6월경을 목표로 한 일본 본토결전 작전 준비의 완성을 명령하였다. 이를 암호명 '결호(決號)작전'이라 불렀는데,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고.

      미군이 필리핀에 이어 1945년 2월 이오지마를 공격하자 오키나와 본토와 규슈 등 서부 일본 상륙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에 따라 1945년 3월 12일 대본영은 각 군 작전주임참모회합을 가졌다. 회의 결과 미군이 본격적인 본토 침공에 앞서 상륙군을 공중 엄호하기 위해 혼슈 인근 지역에 비행기지를 확보하려 조공을 실시할 것으로 예상되었다.[1] 결호작전 지역 중에서도 미군의 보조 상륙지점으로 제주도와 홋카이도가 유력하다고 판단하여 결1호 작전과 결7호 작전이 보다 강도 높게 다뤄졌다.

      이에 따라 3월 20일 제주도를 중심으로 한 '결7호작전' 준비요강이 한반도를 관할하던 제17방면군에게 하달된다. 그 내용은 2~5개 사단 규모의 미군이 1945년 8월 이후 제주도 또는 한반도 이남 지역으로 상륙할 것을 예상하고, 그 지점을 집중 방어하는 한편, 상륙부대를 향해 적극적인 공격도 감행한다는 계획이었다.

      이 때 제17방면군에게 지시된 '국토결전작전 준비요강'의 요지를 보면, 결7호 작전으로 명명된 제주도에서의 결전작전을 위해 제58군사령부와 주력병력으로 2개 사단 및 1개 혼성여단, 기타 예하부대를 배치하도록 했다. 기동병단으로 한반도에 제121사단을 대기시키고 포병과 전차부대를 중국과 만주등지서 이동, 제58군에 직할시키고 있다. 이와 함께 실제 결7호 작전이 진행되면 중국에 주둔하고 있는 관동군과 중국 방면군에거 2~3개 사단을 증강토록 했다.

      이러한 지시대강에 의해 제17방면군이 마련한 결7호 작전의 구체적인 준비요강은 아래와 같다.

      적의 상륙판단
      1. 북 규슈 방면 상륙 또는 조선 해협 돌파를 위한 기지로 하기 위하여 제주도를 공략함.
      2. 위를 목적으로 한 남선(한반도 남부) 도서지대 공략.
      3. 대륙 교통차단을 위하여 남선(한반도 남부)지구 일각에 상륙.
      4. 위를 목적으로 하는 부산 상륙 강행.
      5. 정략을 목적으로 한 조선본토 중심지대의 공략.

      • 적의 가용병력: 2~5개 사단

      • 상륙시기: 차기 작전의 준비기간으로 판단해서 8월 이후로 예상됨.


      작전방침
      1. 주력으로 적의 주요 상륙점을 확보하고, 적의 침공에 제(除)해서는 일체의 전력을 결승점에 집중하여 적을 격멸함.
      2. 제주도는 당초부터 유력한 병력을 배치하고 독력으로 동 섬을 확보케 함.
      3. 병력의 기초배치: 부도 제2의 1, 2와 같음.
      4. 작전준비 완료의 시기: 작전준비는 8월 말 개성(槪成), 10월 말 완성을 목표로 함. 단, 제주도에서는 개성 시기를 7월 말로 예정함.

      출처: 나무위키 결7호작전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태평양 전쟁에서 수세에 몰리게 된 일본은 1945년 2월부터 일본 본토 사수를 위해

      일본 내 6개 지역, 일본 외 1개 지역(제주도) 등 모두 7개 지역에서 결호 작전을 준비한다.

      이중 제주도에서의 작전은 결7호 작전이라

      이름 붙여졌으며, 작전을 독자적으로 수행할 제58군이 신설되고, 예하에 제96사단,

      제111사단, 제121사단, 독립 혼성제 108여단 등 모두 7만 5,000여 명의 병력을 두어

      미군과의 결전을 위한 진지를 구축하고 부대를 배치하는 등 결전 준비를 진행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 안녕하세요. 조형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결7작전은 1948년 4월부터 5월까지 진행된 대한민국 정부의 군사 작전으로, 제주도에서 공산군을 진압하기 위해 진행되었습니다. 이 작전은 대규모로 집결한 정부군과 경찰에 의해 수행되었습니다. 이 작전은 막대한 인명피해와 만연한 인권 유린을 초래했으며, 같은 시기에 제주도에서 일어난 일련의 항쟁과 학살을 일컫는 제주 4.3 사건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결7작전은 제주도의 폭력과 긴장을 고조시킨 요인 중 하나였으며, 제주4.3사건의 기폭제가 됩니다.

    • 안녕하세요. 정광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결 7호 작전은 1953년 7월 27일부터 7월 31일까지 한국전쟁 중에 이루어진 작전입니다. 이 작전은 한국 전쟁의 최종교섭을 위한 판문점 회담 이전에 이루어진 작전으로, 유엔군과 북한군 간의 전투가 일어났습니다.


      결 7호 작전은 북한군이 유엔군 측으로 공격을 시작하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에 대응하여 유엔군은 포위 작전을 실행하여 북한군을 막으려고 했으며, 이 과정에서 북한군과 중국군과의 전면전이 벌어졌습니다. 결국, 북한군은 유엔군의 포위망을 뚫고 탈출하는 데 성공하였으나, 이 작전에서는 양측 모두 많은 인명과 장비 손실을 입었습니다.


      결 7호 작전은 한국 전쟁에서 중요한 작전 중 하나로, 이후에 판문점 회담에서 한국 전쟁의 종전 협정이 체결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