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종이 경복궁을 탈출하기 위한 첫 시도가 미국 공사관으로 피신하려던 것이었으나 이진호의 밀고로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두번째 시도가 아관파천입니다.
1896년 2월 2일, 니콜라이 2세가 조선왕실 보호를 위한 러시아 해군 파견을 승인하자 인천항에 입항한 어드미럴 코르닐로프 호에서 2월 10일, 중무장한 러시아 수병들이 상륙해 공사관의 경비를 강화하고 2월 11일, 궁관계자와 보부상, 러시아 해군의 호위하에 고종과 순종이 러시아 제국 공사관으로 이어하였습니다.
이는 각지에서 봉기한 을미의병을 진압하기 위해 김홍집 내각의 조선군은 물론 일본군까지 지방으로 내려가 수도가 빈 상태에서 이범진과 이완용 등의 친러파와 러시아 공사 베베르 등이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한 결과였다고 합니다.
이 사건 이후로 일본의 영향력은 약해졌고 러시아의 영향력은 강해졌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