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강요셉 전문가입니다.
오페라 작곡가와 대본가로 환상의 콤비를 이루었던 리히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 1864-1949)와 휴고 폰 호프만스탈(Hugo von Hofmannsthal,1874-1929)은 1900년 경에 서로를 알게 되었고 두 사람이 협업을 시작한 것은 1909년 독일 드레스덴에서 초연된 오페라 "일렉트라"부터였습니다. 이 작업이 끝나자 슈트라우스는 모차르트 희극같은 오페라를 만들고 싶으니 적당한 소재를 골라 대본을 써 달라고 호프만스탈에게 부탁했고 한동안 고심한 호프만스탈은 드디어 작곡가의 마음에 꼭 드는 스토리를 구상해냈답니다. 이렇게 해서 1911년 드레스덴에서 초연된 작품이 18세기 중엽 마리아 테레지아가 지배하던 합스부르크 왕정시대 빈을 배경으로 한 오페라 "장미의 기사"였습니다. 장미의 기사란 우리말로 옮기면 함진아비쯤 되는 청혼의 전령을 뜻합니다. 18세기 빈의 귀족사회에서는 양가의 혼담이 이루어진 뒤에 신랑 쪽 친척 한 사람이 신부될 처녀에게 은으로 만든 장미를 예물로 전달해 정식 청원의 예를 가지는 풍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때 은장미를 들고 오는 친척 청년을 "장미의 기사"라고 불렀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