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가장 큰 원인은 왕위 쟁탈떄문 인데요. 1328년 프랑스 카페왕조의 샤를 4세가 남자 후계자가 없이 사망하였고 4촌 형제인 발루아가의 필리프 6세가 왕위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 영국왕 에드워드 3세는 카페 왕가 출신인 그의 모친이 그를 이유로 프랑스 왕위(王位)를 계승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양국간에 심각한 대립을 겪게 되었습니다.
영국의 에드워드 3세는 프랑스 경제를 혼란에 빠뜨리기 위하여 플랑드르에 수출해오던 양모 공급을 중단하였고 그 보복으로 프랑스의 필리프 6세는 프랑스 내의 영국 영토인 기옌 몰수를 선언하였다고 합니다. 1337년 에드워드 3세는 필리프 6세에게 공식적인 도전을 하게됩니다. . 원래 플랑드르는 프랑스왕의 종주권아래에 있었지만, 중세를 통하여 유럽 최대의 모직물 공업지대로서 번창하였지요. 원료인 양모의 최대 공급국인 영국이 이 지방을 경제적으로 지배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기옌 역시 유럽 최대의 포도주 생산지였으므로, 프랑스왕들은 항상 이 두 지방의 탈환을 바라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전쟁의 근본적 원인은 이 두 지방의 쟁탈을 목표로 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