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내전은 왜 발생하였나요?
2011년 경 시리아 내전이 발발한 뒤로 현재에도 미군, 러시아군 등 다양한 세력이 시리아 내에서 활동중인 것으로 알고있습니다.
시리아 내전은 왜 발생하였나요?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지정학적 위치가 큰 원인이라고 합니다.
시리아의 지정학적 위치는 시리아 내전에 대한 국제적 개입을 촉발하는 일차적 원인으로 작용하였다고 합니다. 시리아는 서쪽으로는 레바논과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이라크와 이웃 국가입니다. 그리고 남쪽으로는 이스라엘 및 요르단과 이웃 국가이며, 북쪽으로는 터키와 국경을 접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시리아의 정세 불안은 주변 지역에 상당한 영향을 초래하게 됩니다. 이에 시리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국가들을 포함해 중동 역내 국가들 및 국제정치의 강대국들은 시리아 내전의 파급 효과를 우려하여 개입하게 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시리아 내전의 원인은 경제적, 지역주의, 정치적 및 종파 갈등, 외교적 원인으로 나뉘는데,
경제적 원인으로는 원래 바샤르 알 사아드 대통령이 시리아의 대통령이었으나 시리아 안의 바트당의 사회주의 정책에 반감을 가지고 있어 취임 후 2000년대 이후 대외적으로 경제를 개방하고 시장경제체제를 도입, 이후 연설에서 민주화를 언급하기도 해 이에 반대하는 시리아 지식인 100명이 시국선언을 할 정도였습니다. 후 911테러 사건이 일어나며 미국편에 있어야 하는데 미국 편에 들지 못해 미국과의 관계가 틀어지며 경제 제재를 받게 되며 이라크 출신 난민들이 시리아 안으로 들어와 살기시작하나 일자리도 없고 싼 임금으로 시리아 국민의 일자리를 잠식해 국민들의 불만이 커지며, 서방국가들의 경제 제재로 인해 수출입에서도 제한을 받아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입었으며, 흉년으로 농부들이 파산, 물가가 크게 오르게 되며 내전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지역주의로는 시리아는 원래 지역의 이름이었고 독자적으로 국가가 건설된 것은 1946년 이후입니다. 이후 바트당이 정권을 잡아 사회주의 정책을 시행하며 프랑스 식민지 시절까지 영향력을 자랑하던 지주들이 땅을 압수, 이때 큰 피해를 본게 알레포 지역의 지주들이며 시리아의 수도인 다마스쿠스에서 사회주의 정책을 밀어붙이자 증오로 내포한 지역주의가 발전하게 됩니다.
정치 및 종파 갈등으로는 시리아는 이슬람 국가로 바트당이 지배하고 있는 국가이며 종파, 민족, 종교적인 차별은 하지 않는다고 되어있으나 알라위파라는 이단이라는 이유 하나로 아랍세계에서는 차별을 받고 천대받는 족속이었고 교육을 받지 못해 하급 공무원이나 가정부를 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시리아 사람들 이미지에서 알라위파가 아무리 노력해도 천한 것이라는 이미지가 있었고 알라위파가 정권의 핵심을 차지하고 사회의 모든 기득권을 독점했기 때문에 알라위파가 핵심이 될 수없다는 대다수 국민들은 독재정권에 대해 증오가 있었습니다.
외교적으로는 시리아는 아랍권 국가에서도 유일하게 시아파가 정권을 잡은 나라로 아랍 사회에서 적대시 되는 이란의 입장을 대변해주는 역할을 해오고 있는 중이며 이란과 직접적으로 대립하는 걸프 지역 국가들의 경우 시리아를 좋게 보지 않았고 이후 아랍권 민주화운동에 영향을 받은 시리아 국내의 분위기를 더해 서방국가들의 외교적 질타 및 경제 침체로 결국 반정부 시위가 시작되면서 시리아 내전이 촉발되었다고 볼수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시리아 내전의 시작은 2011년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들의 낙서에서 비롯됐다. 2011년 3월 남부의 작은 도시 다라의 한 학교 담에 혁명 구호를 적은 10대들이 체포돼 고문을 당한 일이 발생한 것이다. 그러나 시리아 정부는 학생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대에 발포하는 등 과잉 대응으로 일관했고, 이에 알아사드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는 전국으로 확산됐다.
시리아의 민주화 시위는 알아사드 정권의 무자비한 진압이 가해지면서 점차 무장투쟁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특히 2013년 8월에는 시리아 정부군이 다마스쿠스 인근 구타의 교외 지역에 생화학무기인 사린가스 공격을 가해 1000여 명이 사망하는 최악의 참사가 벌어지기도 했다.
시리아 사태는 다른 아랍 국가들과는 다르게 수니파와 시아파 간의 종파 갈등으로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시리아 인구 2200만여 명 중 4분의 3이 수니파임에도, 시아파계 분파인 알라위파(Alawi)가 군과 정부 요직을 모두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후 시아파 맹주국인 이란과 레바논 헤즈볼라가 알아사드 정권을 지원하고, 이란과 적대 관계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 등 인근 수니파 국가들이 반군에 무기와 물자를 지원하면서 사태가 확대되기 시작했다. 여기에 혼란상을 틈타 세력을 키운 급진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시리아 북부를 점령하면서 정부군·반정부군·IS 등이 3자가 복잡하게 대치하는 등 나라 전체가 사실상 무정부 상태가 됐다.
에르베 라수드 유엔 사무차장은 2012년 6월 시리아가 사실상 전면적인 내전 상태라고 공식 인정하였다. 이어 7월에는 국제적십자위원회(ICRC)가 민간인 학살이 자행되고 있는 시리아의 현 상황은 내전(internal armed conflict)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ICRC가 시리아를 내전 상황으로 판단함에 따라 민간인에 대한 살인, 고문, 강간 등을 명령 또는 자행한 이와 민간인 거주 지역에 부적절한 무력을 가한 이들을 국제인도법 위반 혐의로 기소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2014년 9월 미국이 시리아를 공습하면서 시리아 내전에 개입했으며, 2015년에는 러시아도 시리아 내전에 개입하면서 사태는 반군을 지원하는 미국과 정부군을 지원하는 러시아의 대리전 양상으로까지 확대됐다. 특히 2017년 4월 4일 시리아 반군 거점 지역인 이들리브 주 칸셰이쿤에서 시리아 정부군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화학무기 공격이 일어나 주민 수십 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벌어졌다. 이에 미국은 참사 이틀 후인 4월 6일 시리아의 샤이라트 공군 비행장을 향해 59발의 토마호크 크루즈 미사일을 발사했다. 시리아 내전 발발 이후 미국이 IS가 아닌 정부군을 공격한 것은 처음이었다. 이후 고조되던 미국과 러시아의 대립은 2017년 7월 양국 정상(트럼프 대통령-푸틴 대통령)의 휴전 합의로 가라앉기도 했다.
출처 : 시사상식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