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통일신라 후에도 계속 경주를 수도로 삼았다고 합니다.
통일 신라는 정치가 안정되고 상업과 수공업이 발달함에 따라 경제적 번영을 누렸습니다.
수도인 금성(경주)은 17만 호나 될 정도로 번성하였다고 합니다.
시내에는 통일 전부터 있었던 동시와 함께 서시, 남시 등 큰 시장이 설치되어 지방의 특산물이 매매되었습니다.
형산강과 그 지류에 위치하여 식수 확보가 쉬우면서 지형이 자연 해자 역할을 하여 방어에 용이하고 경상도 지역치고는 꽤 넓은 평지이자 한반도 남부 최대의 단일 선상지인 경주분지에 위치해 있어 식량 생산력도 높아 서라벌을 중심으로 한 사로국이 주변 소국을 복속하고 영역 국가 신라가 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