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의 유래가 너무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지금 온 세계인들이 즐기고 있는 이 노래는
언제부터 유래되었는지 너무 궁금해서 질문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답변 부탁드립니당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곡조를 붙여 부르는 소리나 말, 또는 글.
음악의 관점에서는 좀더 엄밀하게 ‘시에다 곡을 붙인 하나의 악곡 형식’이라고 정의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음악적 형식의 엄밀성을 앞세운 것이 다를 뿐이다. 노래가 곡조와 말소리라는 두 요소로 이루어진다는 점에는 차이가 없다.
‘곡조+말소리’의 형식을 갖춘 것이면 일단 노래로 규정할 수 있겠으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우선 곡조만 하더라도 짧고 단순한 것에서부터 길고 복잡한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밭에서 말이나 소를 몰 때 내는 소리인 ‘이랴 낄낄낄’이나 장사꾼의 외침 등은 분명히 일상어와는 다른 곡조를 지니고 있지만 이것들을 노래라고는 하지 않는다. 곡조의 단순성 때문에 노래라는 양식에 포함되기에는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곡조가 단순하다고 해서 노래에서 반드시 배제되는 것도 아니다. 자장가나 베틀노래 같은 민요들은 단순한 곡조가 반복되는 것이지만 노래의 범주에 든다. 이는 곡조의 단순성에도 불구하고 의미의 맥락이 분명한 노랫말이 있어서 곡조의 단순성을 보완해 주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도, 책을 읽는 독서성(讀書聲) 같은 것은 노랫말의 맥락이 정연하지만 노래라고 하지는 않는다. 그 까닭은 곡조의 변화가 단순하기 때문인데, 이 독서성이 전문적으로 노래하는 사람에 의해서 다듬어진 시창(詩唱)이나 송서(誦書)는 곡조의 변화폭이 넓어서 노래가 된다.
이렇듯 곡조의 단순성과 변화성은 노래인 것과 노래 아닌 것을 가르는 기준이 되고 있다. 그러나 어느 정도를 기준으로 해서 가르는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밝혀진 바 없고 관념 또는 관습으로 인지하는 정도에 머무르고 있다.
노랫말의 경우에도 어느 선까지는 노래로 인정되고 어디서부터는 아닌가라는 구분이 확연하게 체계화된 바는 없다. 장사꾼의 외치는 소리는 그 뜻이 명확함에도 불구하고 곡조의 단순성 때문에 노래에 포함되지 않는다. 하지만 <청산별곡 靑山別曲>에 나오는 ‘얄리 얄리 얄랑셩 얄라리 얄라’라든가, 아이들의 동요인 ‘랄랄랄……’ 같은 것은 그 자체로는 지시적 의미가 없으면서도 노래라고 본다.
또, 노래의 발생기(發生期)에는 오늘날 미개부족의 그것처럼 무의미한 음성에 곡조를 붙여 불렀을 것으로 추론하는데 이도 또한 노래로 본다. 이러한 사례들로 미루어보건대, 노래와 노래 아닌 것을 분간하는 데는 노랫말보다 곡조의 변화폭과 양식성이 더 크게 관여하는 것 같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은 경우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상가(喪家)에서 곡을 하는 곡성은 흔히 사설까지 곁들이는 수가 있으므로 곡조의 변화와 함께 노랫말의 맥락까지 갖추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을 노래라고 하지 않는다. 그 까닭은 ‘노래’의 어원 및 특성과 관계가 깊은 것으로 이해된다.
중세 국어자료가 보여주는 바로는 ‘노래’는 그 당시 ‘놀애’로 표기되어 있으므로 ‘놀다[遊]’라는 말에서 파생된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므로 노래는 오락성 또는 연희(演戱)의 성격을 명칭 자체에 이미 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은 ‘노래’와 ‘부르다’가 관용적으로 결합하는 사실과도 부합된다. ‘부르다’의 여러가지 뜻 가운데서 ‘외치다’의 뜻이 큰소리로 노래한다는 성격을 드러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한자로 된 기록이나 기타 자료에서 노래를 가리키는 말은 여러가지로 나타난다. 가(歌)·악(樂)·요(謠)·곡(曲)·성(聲)·사(詞)·타령·성악·소리·가락 등이 그것이다. ‘노래·가·소리’ 같은 것은 범칭이고 ‘요·곡·타령’ 같은 것은 개별적인 작품을 가리키는 경향이 있지만, 그 쓰임새가 반드시 일정한 것은 아니다.
그 밖에도 ≪삼국유사≫에 나오는 ‘창량(唱良)’ 같은 것도 노래와 관계가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노래와 관련하여 여러가지의 명칭이 더 있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1) 기원
노래가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는가에 대해서는 단적으로 말하기 어렵다. 역사 이전의 시대에도 노래는 있었을 것이다. 그 초기의 노래라는 것은 원시적인 타악기에 맞추어 별 의미가 없는 소리를 지르는 정도였을 것으로 보는 견해가 동·서양에서 두루 통용되고 있다.
노래에는 노랫말이 필수적이다. 원시시대를 상고해 올라가 보면 언어의 불완전한 발달이 예상되어 그 때에는 노랫말도 무의미한 것으로 채워졌을 것으로 보기도 한다. 이러한 관점은 노래에서 말소리보다 곡조가 선행한다고 보는 데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음악의 기원을 보게 되면, 감정이 흥분된 상태의 절규에서 노래가 시작되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혹은 감정을 소리로 나타내려는 인간의 욕구에서 노래의 기원을 찾기도 하고, 노동의 리듬과 공동작업의 맞춤소리에서 발전한 것이 노래라고 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음향에 의하여 신호를 전달하기 위해서 원시적 악기를 사용하였고 거기서 오는 악음(樂音)의 쾌감 때문에 노래가 창조되기 시작하였다는 논의도 있다. 또는 종합예술의 형태인 춤에 부합해서 발달하였다고 보기도 한다.
그러나 곡조에 선행해서 일상회화의 고저나 강약과 같은 변화요소를 발전시킨 것이 노래라고 하는 말소리 선행설도 있다. 따라서 지금의 단계로는 노래의 기원을 어느 한 가지로 말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2) 삼국시대 이전
노래의 기원이 언어에 선행하거나 또는 병행한다는 사실에 미루어 볼 때, 우리나라의 노래도 구석기시대에서 찾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는 구석기시대가 언제인가 하는 문제가 역사학계에서도 아직 확실하게 밝히지 못한 상태인 데다가, 이 시대에 노래의 흔적을 찾을만한 고고학적 자료도 알려진 바가 없다.
그러나 구석기시대인들의 유물 가운데서 동물이나 사람의 형상을 조각한 것이 있으므로 그들의 활동이 주술적(呪術的)인 신앙과 관련되어 있었으리라고 보고, 그 주술의 방식이 노래의 초기적 형태와 유사할 것임을 추측할 수 있는 정도다.
대략 서기전 4천년 정도로 추정되고 있는 우리 나라의 신석기시대인은 고아시아족으로 추정된 바 있다. 뒤에 이들이 단군조선을 건국하여 한민족의 형성에 뿌리 구실을 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들은 우주만물이 영혼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하늘에 제사하는 습속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후대에 행해진 제천의식으로 미루어 볼 때, 이러한 종교의식에 노래가 있었을 것을 추정할 수 있다. 신석기시대에 와서 노래의 구체적 기원을 찾는 것은 세계적으로 공통된 현상이다. 우리 노래의 기원도 고아시아족의 음악문화에서 찾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편, 서기전 10세기 전후 남만주를 중심으로 형성된 청동기시대에는 한민족과 직접적으로 관련되는 예맥족(濊貊族)이 알타이계 언어를 사용하고 농기구를 만들어 농사를 짓기 시작하였다.
이들이 씨를 뿌린 뒤와 곡식을 거둔 뒤에 노래하고 춤을 추었다는 중국 쪽의 기록에서 이들의 노래는 농경생활과 밀접한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부여의 영고(迎鼓), 고구려의 동맹(同盟), 예(濊)의 무천(舞天)이라든가 마한의 노래는 대체로 춤동작과 결부된 것이며, 하늘에 제사 지내는 의식으로 행해졌다는 점에서 종교적 성격과 관련이 깊은 것으로 보고, 그 동작이 오늘날의 ‘두레’와 흡사하다는 점에서 농업사회의 습속이었을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결국 이 시기의 노래는 춤과 함께 존재하였고 신에게 기원하는 종교적 기능을 가졌으리라는 점은 공통적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런데 이 시기에는 노래의 담당층과 향유층이 따로 나뉘지 않고 모두가 함께 제천의식에 동참하였을 것이고, 그 형태는 의식에 참여한 사람들이 단순한 형태의 춤과 함께 그 노래도 비교적 단조로운 악곡을 지녔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 시기에 사용된 악기에 대해서는 기록이 별로 없으나 변진(弁辰)에 대한 중국기록에 보면, 슬(瑟)이라는 악기가 있었다고 한다. 또 서기전 2천년경의 것으로 보이는 골제적(骨製笛)이 있지만 이것들이 어떻게 사용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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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의 기원은 하늘에 제사를 지낼때 쓰던
그 것이 바탕이 되어서 노래가 시작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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