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기록에 따르면 조선시대에도 키스가 있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조선왕조실록에서 문종의 비 봉씨가 벌인 일인데
아실 분은 아시겠지만, 이분은 문종에게 시집왔는데 문종이 밤 상대를 해주지 않자
궁녀들 상대로 몸을 풀게 됩니다. 당시 용어로는 대식(對食)이라 합니다.
궁이란 데도 워낙 좁다 보니 금방 소문이 나는 바람에 세종이 직접 불러 대질을 하게 됩니다.
여기서 키스와 관련된 표현이 나옵니다.
“저는 궁녀 아무개랑 잔 적이 없습니다! 단지 아무개가 다른 궁녀와 더불어 항상 사랑하고 좋아하여, 밤에 같이 잘 뿐 아니라 낮에도 목을 맞대고 혓바닥을 빨았습니다. 저는 처음부터 같이 잔 일이 없었습니다!”
조선 후기에는 성애를 노골적으로 묘사한 ‘춘향전’에서도 등장합니다.
방자와 이몽룡이 말놀이를 빙자한 음담패설을 할 때
‘내 입(口)과 네 입을 맞추니 두 입 맞춰 려(呂)가 되네’란 구절이 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