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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5.16

고려시대 벽란도라는 곳은 어떠한 역할을 하던 곳이었나요?

고려시대 벽란도라는 곳은 어떠한 역할을 하던 곳이었나요? 예전 역사드라마를 보아도 종종 나왔었고 고려 역사를 공부하다보면 꼭 나오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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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9개의 답변이 있어요!
  • 시간여행자75
    시간여행자75 23.05.16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시대 벽란도는 경기도 개풍군 서면의 예성강 하류에 있었던 '하항(河港)-강의 항구'였습니다.

    예성강은 황해도 고달산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흐르다가 경기도와 황해도의 경계를 따라 흘러 황해로 들어가는데, 이 일대는 산지 지형에 가까워 강의 흐름이 비교적 빠르며 바다에 가까이 위치하고 있어 조수가 밀려드는 불리한 조건을 지니고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비교적 물이 깊어 선박이 자유로이 통행할 수 있었고, 고려 시대의 수도였던 개성과 가까이 위치하여 고려 시대 제일의 하항이자 실질적인 유일의 국제 항구로서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고려 시대에는 중국 송나라 상인 뿐만 아니라 일본을 비롯하여 멀리 남양지방(南洋地方)과 서역지방(西域地方)의 해상들까지 자주 드나들며 교역을 하였던 곳으로 국제적인 교역뿐만 아니라 외국으로 나가거나 국내로 들어오기 위하여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고려의 관문적 역할을 하던 곳이었습니다. 즉 교통의 요지였던 것이죠.

    조선 시대에도 나루터로 교통의 요지로서의 기능을 수행하였던 곳이었고, 도승(渡丞)이 한 명 배치되어 나루터를 관할하게 할 정도로 중요한 곳이었다고 합니다.

    [참조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회-변란도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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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신현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벽란도는 경기도 개풍군 서면의 예성강 하류에 있었던 일종의 무역항이자 국제항이었습니다. 당시 예성강은 다른 강에 비해 산지 지형이라 물의 흐름이 빠르고 바다가 가까운 곳에 있어 물이 깊었는데요. 이 이점으로 인해 무역선박들이 자유로이 왕래할수 있었고 당시 고려시대 수도였던 개성과 가깝다는 점까지 더해져 송나라 일본 등 해외 나라와 교역을 하는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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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전쟁이 끝나고 나라가 안정되자 고려의 백성들은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나라에서도 중국과 일본, 동남 아시아 등 주변 국가들과 활발한 무역 활동을 펼쳤습니다.

    벽란도는 고려 시대 예성강 하류에 위치한 중요한 나루였습니다. 개경으로부터 황해도 연안, 해주 방면에 이르는 길이 벽란도를 지나갔지요. 비교적 물이 깊어서 배가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곳으로 중국과 일본, 멀리 동남 아시아 상인, 아라비아 상인들도 자주 드나들며 교역(交易)을 했다고합니다.

    또한 벽란도는 고려에서도 외국과의 무역이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졌던 곳입니다. 특히 송나라 상인들이 가장 많았고 비단과 서적 등을 팔았습니다. 이 때 고려의 유명한 수출품으로는 인삼과 종이가 있었습니다. 아라비아 상인들은 고려를 코리아라고 부르며 서방 세계에 알리게되었습니다.


    출처 -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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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벽란도는 고려시대 예성강 하류에 위치한 항구로 예성강은 수도인 개경과 연결되었기 때문에 벽란도는 고려의 중요한 항구였습니다.

    송나라와 일본을 비롯해 멀리 동남아시아, 아라비아 상인들도 이곳을 출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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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축복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의 무역항이었습니다. 고려는 전성기 시절 세계의 여러나라와 교역했으며

    고려라는 이름이 세계에 퍼져 코리아의 어원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가 그렇게 불리게 되었지요. 벽란도에는 멀리 아라비아 상인들도

    왕래를 했다고 합니다. 당시 동아시아의 큰 국제항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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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예슬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벽란도는 고려 시대에 외국의 사신과 상인들이 빈번하게 왕래하던 나루로, 예성강 하구에 위치한 고려의 국제 무역항이였다고 합니다. 경기도 개풍군 서면의 예성강 하류에 있었던 하항(河港)인데, 현재는 북한의 개성특별시의 구역으로 되어있습니다.

    다음의 내용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2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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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벽란도(碧瀾渡)는 서해에서 예성강(禮成江)을 통해 개경(開京)으로 통하는 교통로에 존재했던 항구 혹은 나루터를 지칭한다. 개경 인근의 대표적인 나루터 중 하나였다. 특히 고려 시대에 외교 사절단의 왕래 등에 중요하게 이용되었다.

    -출처:우리역사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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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천지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벽란도는 고려시대 예성강 하류에 있던 국제 무역항이다 요충지 입니다.

    고려가 멸망한 뒤, 조선시대에는 국제 해상 무역이 쇠퇴하고 그나마 중국과의 교역도 압록강을 건너는 육로 위주로 변하면서 벽난도는 무역항으로서의 기능은 거의 없었으며 조세미 등을 운반하는 도선장으로서의 역할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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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엄재희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벽란도는 고려 시대의 대표적인 무역항 입니다

    고려 시대 예성강 하류에 위치한 중요한 나루로 개경으로부터 황해도 연안, 해주 방면에 이르는 길이 벽란도를 지나갔습니다

    중국과 일본, 멀리 동남 아시아 상인, 아라비아 상인들도 자주 드나들며 교역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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