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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문어80
조용한문어8023.12.05

메리 여왕이 프랑스에서 스코틀랜드로 돌아간 이유가 무엇인가요?

메리 여왕이 프랑수아 2세와 결혼하고 프랑스에서 살다가 프랑수아 2세가 죽자 스코틀랜드로 돌아간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근데 왕비였는데 왕이 죽었다고 원래 자기 나라로 돌아갔던게 가능했나요?

스코틀랜드로 돌아가야 했던 이유가 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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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
3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프랑스 왕비로 과부가 된 메리는 미망인으로 프랑스에서 계속 머무는 것보다 스코틀랜드에 가서 여왕이 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생각했습니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메리의 시각으로 보면 시어머니는 한낱 장사치 집안에 불과했으니 메리는 가문이 낮고 힘이 없어 은근 시어머니를 무시, 급기야 여러 사람 앞에서 카트린을 피렌체 출신의 장사꾼이라 지칭, 시어머니 눈 밖에 나게 됩니다.

    이는 남편이 죽고 메리가 스코틀랜드로 쫓겨나듯 떠나야 되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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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메리여왕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스코틀랜드의 마지막 여왕입니다. 제임스 5세 서거 후 메리는 생후 6일만에 스코틀랜드 여왕으로 추대되었습니다. 다섯 살 무렵 프랑수아 2세와 혼인이 체결되어 프랑스에서 화려한 유년기를 보냈으나 그녀는 1560년 미망인이 되어 그 다음해 귀국하였습니다. 이후 단리 경 헨리와 재혼하지만 1567년 단리 경은 암살당합니다. 단리 경의 암살은 제임스 햅번의 소행으로 추정되지만 이 일을 무마시킨 제임스와 1567년에 재혼합니다. 이들의 결탁을 탐탁치 않게 여긴 세력들에 의해 그녀는 투옥되고 아들 제임스에게 권력을 이양할 것을 강요당합니다. 그녀는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도움을 요청하며 잉글랜드로 도망칩니다. 그러나 엘리자베스 여왕 암살 사건에 연류되었다는 의혹을 받아 처형당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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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양미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프랑수아 2세가 요절한데다가, 그가 워낙 허약한 탓에 16세에 죽어 후사를 갖지 못했기 때문에 메리는 사별하면서 프랑스 왕실과의 연고가 끊어지게 되었다. 프랑수아 2세의 후사가 없었기 때문에, 당시 열 살에 불과했던 시동생 샤를 9세가 즉위하여 시어머니인 카트린이 섭정하게 되었다. 카트린은 그동안 아니꼬워하던 맏며느리 메리를 깡촌인 스코틀랜드로 쫓아내듯이 보내버렸기에 스코틀랜드로 돌아왔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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