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1846년의 비드랙 - 마야리노 조약을 근거로 파나마 지협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명분으로 전함 내슈빌(Nashville) 호로 사실상 콜롬비아군의 파나마 상륙을 저지하였습다. 그 후 미국은 11월 6일 파나마의 독립을 승인하는 한편 1903년 11월 18일 워싱턴에서 미국 대표와 파나마 대표로 나온 프랑스 운하 건설 회사의 필립 부나우 - 바리야(Philippe Bunau - Varilla) 간에 소위 헤이 - 부나우 - 바리야 조약을 체결하여 운하 건설 공사가 본격적으로 추진되었습다.
파나마는 1903년 콜롬비아로부터 독립했으며, 미국의 지원이 결정적이었습니다. 미국은 파나마 지협에 운하를 건설하려 했지만 콜롬비아와의 협상이 실패하자, 파나마의 독립운동을 지원했습니다. 미국은 군함을 보내 콜롬비아군의 진압을 막았고, 독립 선언 후 파나마와 운하 건설 권리를 포함한 조약을 체결하며 독립을 보장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