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의 그림자: 프라이빗 룸의 비밀과 유령 유동성
1일 전주식 거래는 흔히 뉴욕증권거래소(NYSE)나 나스닥(Nasdaq)처럼 모든 호가와 주문량이 실시간으로 투명하게 공개되는 시장에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현대 금융 시장의 상당 부분, 특히 대규모 거래는 이러한 공개적인 시선을 피해 다른 곳에서 처리된다. 그 주된 무대가 바로 '다크풀(Dark Pool)'이다.

다크풀은 거래 체결 전에 호가나 주문량을 공개하지 않는 장외(Off-exchange) 주식 거래 플랫폼이다. 공식적으로는 대체거래시스템(ATS, Alternative Trading System)으로 분류되며,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감독을 받는다. 다크풀의 핵심 존재 이유는 기관 투자자 등이 대량의 주식을 매매할 때, 그 정보가 시장에 미리 노출되어 가격이 불리하게 움직이는 현상(adverse price moves)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대량 매수 주문이 알려지면 가격이 급등하고, 대량 매도 주문이 알려지면 가격이 급락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사전에 숨기는 것이다. 이러한 '어둠(darkness)' 속 거래 방식 덕분에 붙여진 이름이기에 음지의 영역처럼 느껴질수도 있지만, 엄연히 제도권 내의 거래 방식이다.
약 10년전 고빈도 매매(HFT) 업체에 대한 특혜 의혹 등으로 규제 당국의 집중적인 조사와 단속을 겪었던 이 다크풀이 최근 더욱 깊은 그림자 속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소식이 블룸버그 기사를 통해 전해졌다. 그 중심에는 '프라이빗 룸(Private Room)'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거래 공간이 있다. 이는 월스트리트의 불투명성이 한 단계 더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시장 구조와 유동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 던지고 있다.
다크풀 안의 '비밀의 방', 프라이빗 룸이란?
기사에 따르면, 프라이빗 룸은 기존 다크풀 내부에 만들어진, 문자 그대로 '초대받은(invite-only)' 특정 참여자들만 접근할 수 있는 '게이티드(gated)' 거래 공간이다. 각 룸은 독립적으로 운영되며, 초대받지 않은 외부 참여자는 그 존재조차 알 수 없다. 이는 단순히 거래 의도를 숨기는 것을 넘어, '누구와 거래할 것인가'를 거래 주체가 직접 선별할 수 있는 '배타성(exclusivity)'을 핵심적인 특징으로 한다. 레이몬드 제임스의 데이비드 캐니조는 이를 두고 "블랙프라이데이에 월마트에 가는 대신, 사고 싶은 물건과 그것을 누구에게서 어디서 살지 정확히 알고 쇼핑하는 것과 같다"며 "거래 조건을 통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프라이빗 룸은 브로커-딜러, 마켓 메이커, 헤지펀드, 자산 운용사 등 다양한 시장 참여자들 사이에서 빠르게 채택되고 있다. 특히 미국 전체 주식 거래 중 장외거래 비중이 50%를 넘어서는, 즉 절반 이상이 공개된 거래소 외부에서 이루어지는 현재 상황은 프라이빗 룸 확산의 비옥한 토양이 되고 있다. 코네티컷주 스탬포드에 본사를 둔 ATS 운영사 인텔리전트크로스의 경우, 프라이빗 룸(기사에서는 '호스티드 풀(hosted pools)'로도 지칭)의 추정 거래량이 경쟁 다크풀 운영사 9곳의 전체 거래량을 합친 것보다 많을 정도로 성장했다. 또한 투자은행 제프리스(Jefferies)의 글로벌 퀀트 전략 헤드인 자틴 수랴완시(Jatin Suryawanshi)는 자사 알고리즘이 체결하는 주식 100주 중 약 15주가 프라이빗 룸을 통해 처리된다고 추산했다.
선택적 거래: 왜 프라이빗 룸인가?
그렇다면 시장 참여자들은 왜 이미 불투명한 다크풀을 넘어, 더욱 폐쇄적인 프라이빗 룸을 선호하는 것일까? 인텔리전트크로스의 모회사 CEO인 로만 기니스는 "브로커가 더 나은 체결 품질(execution quality)을 달성하기 위해 상호작용하고자 하는 유동성을 통제하는 것"이라고 핵심 이유를 설명한다. 예를 들어, 시장 가격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다른 기관 투자자나 정보 우위를 가진 고빈도 매매 업체를 피하고, 상대적으로 가격 영향력이 적은 개인 투자자 주문(retail flow)을 처리하는 마켓 메이커와 선택적으로 거래하려는 수요가 있다. 이를 통해 즉각적인 가격 변동 위험(adverse selection)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뉴욕의 부티크 증권사인 캐슬오크 증권의 사례는 이러한 선택적 활용을 명확히 보여준다. 이 회사의 주식 영업 및 트레이딩 헤드인 카를로스 카바나(Carlos Cabana)는 ATS 운영사인 원크로노스(OneChronos)가 제공하는 프라이빗 룸을 '다이버시티 풀(Diversity Pool)'이라 부르며 활용한다. 이 룸에는 소유 구조나 투자 목표 등 특정 자격 기준을 충족하는 약 10개의 부티크 증권사만 참여하며, 캐슬오크는 이들과 우선적으로 거래한다. 카바나는 이를 "초대된 손님만 참석하는 파티"에 비유하며, 이 풀 덕분에 원크로노스가 자사의 세 번째 주요 거래 장소(NYSE, Nasdaq 다음)가 되었다고 밝혔다.
또한, 자체적인 ATS나 SDP(단일딜러플랫폼)를 구축하고 운영하는 데 따르는 막대한 비용, 복잡한 규제 보고 요건, 필요한 네트워크 연결 설정 등의 부담을 감당하기 어려운 소규모 회사들에게 프라이빗 룸은 매력적인 대안이다. ATS 운영사인 레벨(LeveL)의 모회사 CEO 스티브 미엘은 기존 ATS가 자사의 인프라와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이러한 기능을 제공함으로써 "진입 장벽을 낮추고, 기업들이 불필요한 오버헤드를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프라이빗 룸은 '호스티드 풀', '제한된 접근 룸(restricted-access rooms)', 'ATS 풀', '맞춤형 거래상대 그룹(custom counterparty groups)'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며 확산되고 있다.
깊어지는 투명성 문제와 '유령 유동성'
그러나 이러한 효율성과 통제권 강화의 이면에는 시장 전체의 투명성을 심각하게 저해할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가장 큰 문제는 '유령 유동성(Phantom Liquidity)' 문제의 심화다. 프라이빗 룸 내부에서 체결된 거래량은 해당 룸을 운영하는 모(母) 다크풀의 전체 보고 거래량에 단순히 합산된다. 이는 시장 참여자들이 특정 다크풀의 유동성 규모를 파악할 때, 실제로는 자신에게 접근이 허용되지 않는(즉, 프라이빗 룸 내부의) 거래량까지 포함된 수치를 보게 된다는 의미다. 이는 시장 깊이(market depth)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더 나아가, 이러한 폐쇄적인 거래 공간의 증가는 시장을 더욱 잘게 쪼개는 파편화(fragmentation) 현상을 심화시킨다는 우려를 낳는다. ATS는 SEC의 감독 하에 운영되며, ATS-N이라는 공시 양식을 통해 운영 방식에 대한 개요를 제공해야 한다. 이 양식에 프라이빗 룸 운영 여부가 언급될 수는 있지만, 기사에 따르면 사용되는 용어나 공개 수준이 다양하여 얼마나 많은 룸이 있는지, 누가 참여하는지 등의 구체적인 정보를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블룸버그 인텔리전스의 래리 탭은 현재 규정상 ATS가 공개 풀(open pool)과 프라이빗 룸의 거래량을 분리하거나, 특정 고객 그룹을 대상으로 하는 '세분화 전략(segmentation strategies)' 사용 거래량을 구분하여 보고하도록 강제하는 규칙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는 분석가나 투자자가 시장의 실제 유동성을 파악하는 것을 매우 어렵게 만든다.
규제 환경과 다양한 시각
다크풀은 약 10년 전, 마이클 루이스의 베스트셀러 '플래시 보이스(Flash Boys)'가 일부 촉발한 논쟁 속에서 고빈도 매매 업체에 대한 특혜 제공 등 투명성 문제로 언론과 규제 당국의 집중적인 감시를 받은 바 있다. 프라이빗 룸 확산 현상에 대해 블룸버그가 문의했을 때 SEC와 FINRA 담당자들은 답변을 거부했다고 한다.
한편, 모든 ATS가 프라이빗 룸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것은 아니다. 뉴욕 기반 ATS인 퓨어스트림(PureStream)의 CEO 아르만도 디아즈는 자사의 '풀'은 생성 시 모든 구독자에게 공개되고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고 밝혔다(현재까지 요청이 없어 거래량은 0). 그는 모든 구독자에게 개방되지 않는 프라이빗 룸은 규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경고하며, "호스트(룸 개설자)가 룸을 더 많이 통제할수록 사실상 ATS를 운영하는 것에 가까워져 규제 리스크가 커진다"고 지적했다.
물론 사용자 입장에서 프라이빗 룸은 유용한 도구로 인식된다. 기사에 따르면, 프라이빗 룸에서의 거래는 일반적으로 전국 최우선 매수·매도 호가(NBBO)의 중간값(midpoint)에서 체결되는 것을 목표로 하며, 룸에서 체결되지 않으면 더 넓은 ATS로 주문이 이동될 수 있다. 인텔리전트크로스의 경우 프라이빗 룸 거래량이 작년 평균 약 5.4%였고, 원크로노스는 현재 5% 미만이지만 "성장 모드"에 있으며 "소매 및 기관 브로커 모두의 관심이 증가했다"고 밝혔다. 레벨(LeveL)은 업계 표준 분류 기준 부재를 이유로 구체적인 수치 공개를 거절했다. 얼라이언스번스틴의 마크 걸리아치는 자사 거래의 최대 75%가 장외에서 이루어지며, 프라이빗 룸 비중은 아직 작지만 성장할 것으로 본다며 "혁신적이며 계속 존재할 것"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는 것보다 더 많은 일들이 그곳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효율성과 투명성 사이의 딜레마
블룸버그 기사가 상세히 파헤친 월스트리트의 '프라이빗 룸' 현상은 현대 금융 시장의 복잡한 단면을 보여준다. 특정 참여자들에게는 거래 상대 통제, 비용 절감, 향상된 체결 효율성 등 명확한 이점을 제공하는 혁신적인 도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이는 시장 전체의 투명성을 기존 다크풀보다 한 단계 더 저해하고, '유령 유동성' 문제를 심화시키며, 시장 파편화를 가속화하고, 규제 당국의 감독을 더 어렵게 만들 수 있는 심각한 우려를 안고 있다. 기사에서 지적된 불충분한 정보 공개 문제는 이러한 우려를 더욱 증폭시킨다. 결국 프라이빗 룸의 확산은 효율성과 투명성 사이의 끊임없는 긴장 관계를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이며, 이 '그림자 속의 그림자'가 시장 구조에 미칠 장기적인 영향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함을 시사한다.
더 고민해볼것은 지금 당장은 프라이빗 룸이 '거래 당사자'의 효율적인 거래를 도와주지만, '전체 시장'의 효율성을 저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더 많은 거래당사자들이 '효율적인 거래'를 위해 다크풀과 그 안에 있는 프라이빗 룸에서 거래하는 비중이 계속 성장해 전체의 과반 이상을 차지하는 날이 온다면, 원래의 의도대로 동작할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