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예술가들의 작품은 그가 죽으면 비로소 가치를 갖나요?
안녕하세요. 김찬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작가가 죽어야지만 작품이 가치를 갖는다는건 선입견일 수도 있겠습니다. 생전에도 인정을 받는 작가들도 많습니다. 피카소 같은 경우 생전에도 인정받고 작품수도 많았으며 앤디 워홀역시 생전엔 스타작가로 군림하였었습니다. 고흐나 이중섭 같은 작가들의 경우 생전에 작품도 거의 팔지 못하고 어렵게 지냈고 사후에 인정을 받아서 질문자님과 같은 의문을 가질수도 있겠으나 피카소나 앤디워홀의 예처럼 작품의 가치는 반드시 죽어야만 인정받는건 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운이 좋고 운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할수 있겠습니다. 사실 생전에 고생을했고 사후에 인정을 받았다는 극적인 스토리 자체가 유명해졌기에 그런 고정관념이 생기신건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그럼 도움이 되셨다면 추천과 좋아요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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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화폐위조범의 처벌은 어떻게 했나요?
안녕하세요. 김찬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17 세기 중반부터 중국과 일본을 통해 은과 동을 수입하게 되면서 동전이 생산되게 되는데 이 후 동전 유통이 활발해지자 동전을 불법 주조해 유통하는 문제가 생겼습니다. 규모는 그리 크지는 않았을 것으로 추정하는데, 동전의 원료인 동은 일본에서 대부분 수입하고, 그 수입 교역 통로(현재의 부산 동래구 일대)를 사실상 국가에서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따라서 동전의 불법 주조는 동전을 발행하는 장인들과 봉족들이 저지르는 경우가 많았고, 불법 주조 현장을 급습해도 정보가 사전에 새어나가 잡기가 어려웠습니다. 동전 불법 주조는 주로 흉년기에 성행한 것으로 알려졌고, 을병대기근(1695~1697) 시기에 특히 성행했다고 합니다. 당연히 정부에서는 이를 막기 위해 여러 대책을 세웠습니다. 처벌도 강력했는데, 동전을 불법 주조한 장인은 사형에 처하고, 자금을 조달한 봉족은 유배에 처했다고 합니다. 또한, 감시를 엄격하게 하고자 주조할 수 있는 화로의 수를 제한하고, 동이 민간에서 동전 주조에 사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지정된 놋그릇 외의 놋그릇은 사용할 수 없도록 하는 규정(유기금단사목(鍮器禁斷事目))도 시행하기도 했습니다.그럼 도움이 되셨다면 추천과 좋아요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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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와 비슷한 수준의 대우를 받은 원나라 복속지역이 있나요?
안녕하세요. 김찬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원나라는 존속기간이 97년으로 오래 가지는 못했습니다그 이유는 군사력만으로 세워진 나라여서 과거 로마 제국이나 중화권 국가들과는 달리 소프트 파워가 부족했고, 지배계급 상당수가 문맹이었으며,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해서 통치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또한몽골의 잔혹한 살상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 인구가 많이 감소한 상태였다. 여기에 사치를 일삼는 몽골 지배층의 과도한 수탈, 이에 따른 하층민들의 궁핍, 사회 체제의 모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였습니다고려와 비슷한 수준의 대우를 받은 원나라의 정복지역은 없었던걸로 판단 됩니다. 요나라, 금나라, 청나라와 달리 한족을 노골적으로 노예 취급했기 때문이고 정복문화였기 때문에 사치와 향락이 심했다고 합니다. 오히려 고려같은 대우를 해준 나라는 고려 외엔 없는것 같습니다.그럼 도움이 되셨다면 추천과 좋아요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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벧엘지역은 어디인가요? 왜ㅜ이런지명을 갖게되었나요
안녕하세요. 김찬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타나크에 나오는 지명으로 예루살렘 북쪽에서 약 17km 지점에 있습니다. '베델'이라는 이름은 히브리어로 '집'을 뜻하는 베트(בֵּית / beth)와 '하느님'을 뜻하는 엘(אֵל / el)이 합쳐진 베트 엘(בֵּית אֵל / beth el)이 변화한 표현입니다.'베델'은 공동번역 성서 표기로 영어 발음인 '베설(/ˈbeθəl/)'과 함께 외래어 표기법에 등록되어 있는 표기입니다. 한국 천주교에서는 '베텔'이라고 하고, 공동번역 성서의 표기로는 '베델'이라고도 합니다. 개신교에서는 '벧엘'이라는 표기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그럼 도움이 되셨다면 추천과 좋아요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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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내 개인적 프로필을 새로이 작성할려고 하는데..
안녕하세요. 김찬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안정감이 맞습니다. 안전성’은 ‘위험이 없거나 안전을 보장하는 성질’을 의미합니다. “자동차의 안전성을 높이다” 와 처럼 쓸 수 있습니다 ‘안정성’은 ‘바뀌어 달라지지 않고 일정한 상태를 유지하는 성질’을 의미합니다 “직장의 안정성을 보장하다” 처럼 사용합니다.그럼 도움이 되셨다면 추천과 좋아요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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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컨 실외기는 어떤 원리로 작동을 하는 것인가요?
안녕하세요. 김찬우 과학전문가입니다.실외기는 증발기(냉각코일)에서 증발된 냉매를 다시 응축시켜 실내기에 보내주는 장치이며 응축 과정에서 발생하는 뜨거운 열을 식혀주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이와 같이 기체를 압축하여 액체화할 때에는 아주 많은 열을 방출합니다. 실외기 앞을 지나갈때 뜨거운 바람이 나오는걸 보신적 있으실 겁니다. 그럼 도움이 되셨다면 추천과 좋아요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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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 물에 빠졌을때, 차 문이 열리지 않는 과학적 이유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김찬우 과학전문가입니다.차량 침수시 차량 밖에 물이 어느정도 높이까지 차 오르느냐에 따라 문을 여는데 들어가는 힘이 달라지게 됩니다. 문의 절반정도 높이까지 차오르면 문을 열수 있겠지만 차가 전체다 침수되었을 경우는 수압때문에 문을 열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물의 무게가 문을 여는 사람의 무게보다 더 큰경우는 문을 열수가 없겠지요그럼 도움이 되셨다면 추천과 좋아요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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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낳고 미역국을 먹으면 수유가 더 원활하다는데 과학적인 증거가 있나요??
안녕하세요. 김찬우 과학전문가입니다.결론을 말씀드리면 과학적인 근거는 없습니다.미역국이 젖양 늘리는 데 다른 국보다 도움이 될까요? 란 질문에 대한모유수유의사회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고 답변을 하였습니다.. 미역국이 젖양을 늘린다는 연구 결과는 없습니다. 오히려, 미역에는 요오드가 많이 들어 있어서 너무 많이 먹으면 모유 요오드 농도가 높아져 아기의 갑상선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습니다.한국 수유모에게 권장되는 1일 요오드 권장섭취량은 0.34mg입니다. 권장량 외에 사람 몸에 유해한 영향이 나타나지 않는 최대 수준, 즉 넘지 않도록 권고하는 기준을 상한섭취량이라고 하는데 한국 수유모의 요오드 상한섭취량은 권장량의 7배 정도인 2.4mg입니다. 미역국 한 그릇이 건 미역 7g에 해당되고 여기 들어있는 요오드는 1.1mg으로 수유모 1일 권장량의 3배가 넘습니다. 2019년 식약처 연구에서도, 분만 후 첫 2주 동안, 산모들이 매일 요오드를 권장량의 10배 이상, 상한섭취량의 1.5배가 넘는 3.6mg 섭취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너무 많이 드시는건 추천하지 않습니다.2020. 3. 2. 식약처는 산후조리할 때 미역국은 하루에 2번이면 충분하다고 제시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산후 4주간 요오드 상한섭취량 이상으로 미역국을 먹을 경우, 갑상선 질환이 있는 임신부나 수유모의 경우는 갑상선기능저하 가능성이 있지만, 건강한 성인은 걱정할 정도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그럼 도움이 되셨다면 추천과 좋아요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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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전주의로 지어진 유명한 건축물이 있나요?
안녕하세요. 김찬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신고전주의 건축 그것은 18 세기와 19 세기 초에 생산 된 건축 양식이었습니다. 신고전주의 풍 건축물은 새로운 바로크 양식과 Rococo의 장식적인 가벼움에 반발하여 시대를 초월하는 절대적 미는 그리이스와 로마의 건축이라고 믿고 그리이스와 로마양식을 모방하였습니다.대표적인 건축가로는 자크 제르맹 수플레인데 그가 만든 파리 판데온이 대표적인 작품이라 할수 있습니다. 판테온은 1764 년에서 1790 년 사이에 건축 된 프랑스의 건축물로 프랑스 수도에서 최초로 중요한 기념물로 인정 받았습니다. 그것은 룩셈부르크 정원 근처의 라틴 쿼터 (Latin Quarter)에 위치하고 있습니다..그럼 도움이 되셨다면 추천과 좋아요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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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쟁 당시 중국 인민 지원군이 참전하고 가장 최초로 벌어진 전투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김찬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한국전쟁 당시 중국 인민지원군, 한국 약칭 및 통칭 중공군은 1950년 10월 압록강을 넘어 한반도에 들어와 조선인민군의 우군으로서 6.25 전쟁에 불법 개입한 중화인민공화국의 군대입니다. 1950년 10월 19일 한반도에 처음 침입한 이래,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맺어질 때까지 총 병력 약 240만 명 이상 투입되었습니다. 이 가운데 전투 중 사상자는 전사자 18~20만 명을 포함해 약 36~40만 명, 질병이나 사고 등으로 인한 사상자를 의미하는 비(非)전투 사상자 38~ 40만 명 정도로 추산됩니다중공군이 강했던 이유는 아시다시피 인해전술로 불리는 병력숫자 였습니다. 휴전협정 직전의 북한 주둔 중국 인민지원군 총 병력은 야전부대 17개 군과 각종 지원부대를 합해 무려 120만 명까지 증강되었습니다. 여기에는 일선 전투부대 외에도 후방 경비 및 보급을 담당하는 병력도 상당했습니다. 당시 전후방 전 병력을 합해 40~45만 명에 불과했던 북한군보다 훨씬 많았습니다. 사실상 공산군 측 전력의 70% 이상을 책임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유엔군 총 병력 90만 중 한국군의 병력이 60만으로 다수였음을 보면, 6.25 전쟁 후반기의 중공군이 강했던 이유를 짐작해 볼수 있겠습니다.그럼 도움이 되셨다면 추천과 좋아요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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