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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의 아방궁의 규모는 얼마나 됬고 진짜로 화려했을까요?
진시황이 건설했다는 아방궁은 중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궁전 가운데 하나입니다. 사기에 의하면 아방궁의 정면 길이가 동서로 500보(600~800m) 남북 폭은 50장(113~150m)에 달했다고 합니다. 내부에는 최대 1만명이 동시에 앉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아방궁의 건설에 70만명이 동원되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아방궁은 진나라 6국의 궁전을 모두 모방하여 각국에서 데려운 미인들과 비빈들이 머물렀으며, 진귀한 보물과 사치스러운 보물이 가득했다고 합니다. 두보의 시에는 300여리를 덮고 해를 가릴 정도로 장대하고 화려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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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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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온난화로인한 기후변화로 글로벌 문화재들이 어떤 피해를 입고 있나요?
최근 지구 온난화로 인한 극심한 기후 이변은 문화 유산에도 피해를 줄 수 있습니다. 집중 호우로 문화재가 수몰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2023년 충남의 집중 호우로 부여 왕릉원 고분군 일부가 유실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강풍과 태풍으로도 문화재가 구조물이 날아가거나 무너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건조한 날씨로 인한 산불 피해로 목조 건축물이 전소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빙하가 녹으면서 해수면이 상승하여 해안 유적이 침수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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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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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에는 귀족의 오등작 제도가 없었나요?
중국의 공, 후, 백, 자, 남으로 대표되는 세습 귀족 작위 체계가 일찍부터 정비되어 작위에 따라 정치적 경제적 특권을 세습하였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오등작 제도는 정식으로 도입되지 않았습니다. 일본도 국가 발전 단계에서 오등작 제도가 없다가 메이지 유신 이후 1869년에 "화족제도"를 만들어 중국과 서양의 작위 제도를 참고하여 오등작을 채택하여 시행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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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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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삼국지 이야기는 실제 있었던 이야기 인가요?
중국의 삼국지 이야기는 실제 역사인 위, 촉 오 역사를 바탕으로 한 소설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흔하는 아는 삼국지는 역사와 소설이 결합된 형태로 후대에 전해진 민간 설화, 전설, 영웅담 나관중의 상상력이 더해져 많은 부분이 각색, 과정된 것입니다. 대부분은 실제로 존재했던 인물이지만 일부 인물이나 사건은 소설에서 새로 만들어지거나 크게 각색된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삼고초려, 공성계 등은 소설적 각색이 강한 사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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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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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포에니전쟁 당시 왜 한니발은 카르타고의 지원을 못 받았나요?
2차 포에니 전쟁에서 한니발은 스페인에서 출발해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로 진군했지만 이탈리아 현지에서 본국의 추가 병력 지원이나 물적 지원 없이 장기간에 걸쳐 싸워야 했습니다. 그 이유는 1차 포에니 전쟁 이후 지중해 해상권을 로마가 장악하고 있어 병력, 보급품 등을 지원하는데 매우 어려웠습니다. 또한 카르타고 내부 정치 역시 한니발 지원에 소극적이었고, 본국의 일부 지도자들은 한니발의 원정에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한니발이 이탈리아에 고립되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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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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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를 보면 한족과 만주족 등 여러 민족들이 중국 대륙을 번갈아 가면서 정복하고 다스렸는데, 그렇다면 이들 민족간에 결혼 등이 많이 일어나게 되었나요?
중국에서 민족간 결혼과 문화 융합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 예를 들어 만주족이 세운 청과 몽골족 등은 정치적 연합과 안정, 권력 강화를 위해 정략 결혼을 적극 활용했습니다. 예를 들어 청나라 초기 만주 황실은 몽골 귀족과 빈번히 혼인하며, 서로의 권력을 공고히 하였습니다. 반면 한족 왕조는 민족 간 혼인을 엄격하게 제한하기도 했습니다. 송나라는 '금지족제혼'을 시행하여 한족과 이민족 간의 통한을 제한하였습니다. 그러나 실제 생활에서는 지역과 시대에 따라 융합과 분리가 반복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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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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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투는 요즘에 많이 하는데요 타투 역사는 어떻게 되나요?
타투는 신석기 시대부터 전 세계적으로 존재해온 매우 오래된 문화입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이미 기원전 2000년경부터 타투가 있었으며, 미라의 피부와 고고학적 유물, 고대 미술 등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폴리네시아, 동남아시아, 유럽 등 여러 문화권에서도 신분, 소속과 용맹을 과시하고, 치유와 장식을 위해 타투를 하였습니다. "타투"라는 용어는 18세기 제임스 쿡 선장이 타이티 등 태평양 지역을 탐험하며 타투라는 용어와 문화를 유럽에 소개하면서 비롯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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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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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초 7국의 난이 일어난 역사적 배경은 어떻게 되나요?
오초 7국의 난은 기원전 154년인 전한 초기 일어난 반란입니다. 한나라를 세운 고조 유방은 군국제를 시행하여 친족과 고인들에게 제후로 봉하여 지방을 통치하도록 하였습니다.시간이 흘러 제후국의 힘이 커져 중앙의 통제에 위헙이 되자 경제가 제후들의 권한을 축소시키려 하였습니다. 특히 어사대부 조조(조착)가 제후들의 죄를 빌미로 봉토를 삭감하는 등 강경한 조치를 단행한 것입니다. 오와 초나라 등 주요 제후국들은 영토가 줄어들면 세력과 경제적 기반이 약화될 것을 우려하여 연합을 하여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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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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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례(過禮)의 정확한 의미와 정리가 궁금합니다
과례(過禮)는 유교 문화에서 지나친 예절로 예의가 도를 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즉 본래 취지에서 벗어나 오히려 예의에 어긋나게 지나치게 예의를 차려 상대방을 불편하게 하는 경우를 말합니다."과유불급"이라는 말이 있는데 예절도 적당함을 강조하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상대방에게 지나치게 공손한 태도는 오히려 상대방에게 불편함을 준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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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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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시전투로 인해서 무굴제국이 어떻게 되는건가요?
플라시 전투(1757)는 무굴제국의 쇠퇴에 결정적 계기가 됩니다. 영국 동인도회사가 프랑스 동인도회사에 지원을 받고 있었던 벵골의 실질적 지배자였던 벵골 태수를 무찌르고 미르 자파르를 매수해 벵골의 새로운 통치자로 세웠습니다. 이로 인해 벵골 지역은 영국 동인도 회사의 지배 아래 들어가게 됩니다. 플라시 전투 이후 벵골처럼 부유한 지방들이 영국의 영향력 아래 들어가면서 무굴제국의 실질적 통치력과 재정 기반이 더욱 약화되었습니ㅏ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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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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