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는 왜 쿠르드족을 매우 싫어하고 배척하는건가요?
튀르키예는 과거 오스만 제국을 모체로 성리된 국가입니다. 오스만 제국은 밀레트 제도를 통해 쿠르드족에게 일정한 자치권을 부여하며 공존했습니다. 1차 대전 이후 오스만 제국이 멸망하고, 1923년 터키 공화국이 수립되면서 무스타파 케말은 단인 민족 국가를 목표로 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쿠르드족의 언어, 문화, 정체성이 억압된 것입니다. 반면 1차 대전 후 연합국은 1920년 세브르 조약에서 쿠르드족의 독립을 약속했지만 1923년 로잔 조약으로 철회되면서 쿠르드족은 터키, 시리아, 이라크 등으로 분할되었으며, 이는 큰 좌절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이후 1978년 쿠르드족의 무장 단체인 PKK가 결성되어 무장 투쟁을 전개했으며, 터키 정부는 강경 진압하면서 갈등이 심화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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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제주도를 탐라국이라고 했나요? 탐라국이면 별도의 국가였나요?
제주는 과거 탐라국이라고 불렸습니다. 탐라국은 3세경부터 12세기 초까지 독립된 정체성을 유지하며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탐라국은 해상교역을 통해 발전한 고대 해양 왕국이었습니다. 신라와 백제에 조공을 바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938년 탐라는 공식적으로 고려에 복속되었고, 이후 지방 행정구역으로 편입되었습니다. 특히 1105년(고려 숙종 10년)에는 탐라군으로 개편되며 고려의 직접 관할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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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수니파와 시아파가 언제부터 서로 갈등이 빚어진건가요?
수니파와 시아파의 갈등은 632년 무함마드가 후계자를 지정하지 않아 생긴일입니다. 이 과정에서 후계자인 칼리프 선발 과정을 두고 수니파는 공동체 합의를 통해 선출하자고 주장하고 시아파는 무함마드 혈통을 이어받아야 한다고 주장입니다. 특히 무함마드의 사위이자 사촌인 4대 칼리프 알리가 되었지만 암살당하고 그의 아들 후세인이 680년 카르빌라 전투에서 수니파 칼리프의 군대에 의해 살해되면서 갈등이 심회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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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지브롤터지역은 어쩌다가 영국에 속하게 된것인가요?
좋은 질문이네요. 제브롤터가 영국령이 된 것은 18세기초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과 관련됩니다. 당시 스페인의 카를로스 2세가 후계자 없이 죽자 프랑스, 오스트리아가 스페인 왕위를 두고 전쟁을 벌었는데, 영국과 네덜란드도 오스트리아를 지지하며 참전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영국 해군이 1704년 스페인 남단의 지브롤터를 점령한 것입니다. 전쟁이 끝나고 위트헤흐트 조약(1713)에서 스페인이 영국에 지브롤터를 할양해 줬습니다. 따라서 현재까지 영국이 지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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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법률 체계는 현대 법률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로마의 법률 체게는 현대 법률에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우선 로마법은 유럽 대륙법 체계(프랑스, 독일)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이는 재산권, 계약, 상속 등 민법의 기초를 제공했습니다. 또한 로마법은 법률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정리한 최초의 사례로 로마법대전은 오늘날 법전 편찬의 모델이 됩니다. 그 외에도 로마법에서 계약 자유, 법앞의 평등, 무죄 추정 등은 현대 법률 원칙의 개녑이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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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별초는 어떤 군사조직이었나요?
고려시대 별초는 처음 명종 재위 시 조위총의 난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정예병을 선발하여 선봉에 세운 것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후 상설 부대 성격으로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최우 집권기 야별초를 좌, 우별초, 그리고 몽골에서 돌어온 병사들로 구성된 신의군으로 구성하였습니다. 별초는 기동성과 전투력이 뛰어난 정예부대로 수도 방위와 치안 유지 등을 담당했습니다. 별초는 비상 조직으로 중요한 기능을 하였으며, 정규군의 부족한 역할을 보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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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라는 나라가 만들어진 가장 큰 이유는 영국의 식민지가 되면서 그 안에서 다들 인도인이다라는 자아가 만들어진거겠죠?
인도는 200년 동안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았으며, 행정, 교육 철도 등 근대적 인프라를 구축했지만 동시에 경제적 수탈과 갈등을 초래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각 지역과 민족들이 스스로 인도인이라는 정체 의식이 생긴 것은 사실입니다. 영국의 경제적 착취와 억압은 계층 간의 갈등에도 불구하고 "영국에 맞서야 한다"라는 민족 의식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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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제국의 공식 언어였던 라틴어는 어떤 언어에서 유래 되었나요?
라틴어는 인도 유럽어족에 속하며 이탈리아 반도의 라티움 지역 방언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로마제국 덕분에 공용어로 자리잡았습니다. 프랑스어, 이탈리어어, 스페인어의 모체가 되었으며, 중세 유럽에서 학문, 종교의 공용어로 사용되었습니다. 또한 영어 등 유럽 언어에 많은 기반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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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정치 체제는 왕정에서 공화정을 거쳐 제정으로 변화했는데요
로마는 왕정, 공화정, 제정으로 변화 발전하였습니다. 왕정(기원전 753-기원전 509)은 왕이 군사, 사법권을 독점적으로 행사하였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왕 타르퀴나우스 슈페르부의 폭정에 대한 귀족의 반발로 왕정이 폐지되고 공화정이 성립하였습니다. 공화정(기원전 509-기원전 27) 은 집정관 2명, 원로원, 민회가 권력을 나누는 혼합 정체입니다. 견제와 균형을 통해 안정된 정치가 운영되었습니다. 처음 귀족들이 원로원을 중심으로 권력을 독점하자 평민들이 대항하여 호민관, 평민회를 설치하고, 법적으로 평민권이 보장되면서 민주적 요소가 확대되었습니다. 그러나 공화정 말기 벌족파와 평민파의 대립, 스파르타쿠스 반란 등으로 혼란해지자 군인 정치가가 출현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기원전 27년 옥타비아누스가 초대 황제로 즉위하면서 제정이 수립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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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은행은 언제 어디서 시작되었나요?
최초의 근대적 은행은 14세기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은행업의 전통이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1656년 스톡홀름스 방코가 설립되었으며 1661년 최최로 은행권을 발행했습니다. 이는 현대 의미의 은행 시스템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1694년 영란은행이 최초의 중앙은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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