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를 보면 궁금한게 있어요 여기서 질문
중국 삼국시대 위나라가 촉나라에 비해 월등하게 국력에 강했습니다. 위나라는 본래 황허가 유역의 비혹한 화북 지역을 거점으로 인구 440만 이상의 국가였습니다. 이와 비교하여 촉나라는 사천의 산악 지역의 인구 90만 정도였습니다. 즉 위나라는 넓은 평야와 인구로 세수, 군수 생산이 안정적이었고, 조조는 둔전제를 통해 자영농민을 육성을 통해 국가 주도의 경제를 강화했습니다. 반면 촉나라는 지형적으로 폐쇄적이고 방어에는 유리했으나 확장이 제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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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조선시대에 하이퍼인플레이션은 어떻게 대응했나요?
과거 조선 시대에서 오늘날과는 다르지만 물가 조절을 위한 조치는 있었습니다. 숙종 때 이후 상평통보를 대량 주조하여 기근 구휼 재정에 충당하면서 일시적으로 동전 공급이 급증하며 물가가 급등했습니다. 이에 조정에서는 주조를 줄이고, 유통을 억제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곡물, 포 병행 사용 비중을 늘려 동전 의존을 줄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물가조절 기관인 상평창에 비축한 곡물을 풀어 흉년, 기근 급등시 물가를 조절하였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조선 후기에는 동전 유통이 부족하여 화폐 가치가 높아지는 현상이 있었으며, 이를 '전황'이라 하였습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실학자 이익은 폐전론을 주장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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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이스라엘 누가 더 나쁜걸까요……
사실 이란은 이스라엘이 1948년 수립될 당시만 하더라도 중동에서 이스라엘을 지지한 국가였습니다. 하지만 1979년 이란 혁명이 일어난 후 이란은 반미, 반이스라엘 정책을 표방하면서 적대적인 관계로 전환됩니다. 뿐만 아니라 헤즈볼라, 하마스, 후티 반군 등 반이스라엘 무장 단체를 지원하여 왔습니다. 반면 이스라엘은 이란의 적대적 행위에 대해 강경하게 대응해 왔습니다. 국제 여론의 입장에서 보면 국제 기구는 이란을 테러 지원 핵위협으로 이란을 비판하고, 중동 국가도 이란의 핵 개발에 반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과도한 공습 등의 대응에 대해 비판적입니다. 즉 어느편이 좋고 나쁜 것이 아니라 평화적 문제를 해결을 지지하는 것이 현실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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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전쟁은 어떤 이유로 여러 국가들이 참전을 했나요?
7년 전쟁은 1756년부터 1763년까지 유럽 국가들 사이에 벌어진 국제전입니다. 주요 원인은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문제로 프로이센이 오스트리아와 싸워 승리하여 슐레이지엔을 빼앗자, 이를 되찾기 위해 오스트리아가 프랑스와 함께 공격했습니다. 이에 북아메리카, 인도 등에서 프랑스와 갈등하고 있었던 영국이 프로이센 편에 섰으며, 러시아는 프로이센 팽창을 견제하기 위해 오스트리아 편에 섰습니다. 그리고 스페인, 스풰덴도 영토 회복을 위해 프랑스 편을 들어 개입하면서 국제전의 양상으로 전개됩니다. 유럽 전쟁이 북미, 인도, 필리핀으로 퍼지며 포루투가르 작센 소국도 참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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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화비의 주요 내용은 어떻게 되나요?
척화비는 흥선대원군이 1871년 통상수교 거부 의지를 전국적으로 알린 비석입니다. 주요 내용은 "양이침범 비전즉화 주화매국"(洋夷侵犯 非戰則和 主和賣國)으로 "서양 오랑캐가 침범하는데 싸우지 않으면 화친하는 것이요"이란 내용입니다.병인양요, 신민양요, 오페르트 도국 사건으로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 의도를 파악한 흥선대원군은 척화비를 세워 쇄국 의지를 알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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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의 흥망 성쇠의 시기인데 개구리가 독사에게 물린듯 조용한국민
조선말 붕당의 폐해를 당쟁, 탐관오리로 파악하고, 이를 현재 우리나라 국회 문제를 지적하고 국민들의 무관심을 지적한 것 같습니다. 구한말 세도정치, 탐관오리의 수탈로 백성들의 삶이 도탄에 빠진 것은 사실입니다. 게다가 제국주의 침략 경쟁에 우리나라가 몰렸습니다. 하지만 민중들은 동학농민운동, 독립혁회, 의병 항쟁으로 반봉건, 반제국주의 운동을 전개했습니다. 즉, 정부가 이를 탄압했지 모든 민중들이 모른척하지는 않았습니다.그리고 우리나라는 식민지 경험과 근대화, 민주화를 이룬 세계 유일의 나라입니다. 이는 국민들의 시민의식을 바탕으로 합니다. 질문자와 같은 문제 의식과 관심도 우리나라의 발전에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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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책략 유포에 대한 반응은 어떠했나요?
조선책략은 중국인 외교관 황준센에 의해 기술된 책자로 1880년 일본에 2차 수신사로 갔던 김홍집에 의해 유입되었습니다. 주요 내용으로 조선이 러시아를 방비하기 위해서는 친중국, 결일본, 연미국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미국을 통해 러시아의 침략을 견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조선의 개화를 주장했습니다.조선책략이 유포되었을 때 고종과 정부는 개화정책을 추진의 필요성을 확인하여 1880년 통리기무아문을 설치하였습니다. 또한 러시아를 막기 위해 미국과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했습니다. 하지만 유림들은 개화정책과 미국과의 수교에 적극적으로 반대하여 위정척사 운동을 전개했습니다. 대표적으로 1881년 이만손 등 영남 유생들은 만인소를 올려 반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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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정한론의 과정에 어떠했나요?
정한론은 메이지 유신 이후 조선과의 수교 과정에서 서계 문제로 불가지게 됩니다. 1873년 메이지 유신을 주도한 사쓰마번과 초슈번 출신 강경파 등이 내부 불만과 조선의 무례를 이유로 정한론을 주장했습니다. 일본은 탈아론을 바탕으로 서구 열강처럼 제국주의 국가화하며, 국가 부흥을 위해 조선 정부의 필요성을 논의하면서 정부 정책화하였습니다. 강화도 조약으로 정한론이 실패하자 1877년 사이고 다카모리가 주도한 사쓰마 사무라이들이 반란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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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신호등은 왜 약속이나 한 듯 빨간색, 노란색, 초록색일까요?
신호등은 1868년 영국 가스등의 빨강, 초록에서 시작하여 1912년 미국 전기식 2색, 그리고 1920년 디트로이트 윌리엄 포트에서 노랑색이 추가되어 3색이 완성되었습니다. 그리고 1968년 비엔나 협약으로 국제 표준화가 되었습니다. 빨강은 피, 위험 상징하며, 노랑은 빨강과 초록의 중간 파장으로 대비 강합니다. 또한 초록은 짧은 파장으로 안전과 진행, 직관적으로 빨과 가장 대비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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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과 미국의 상반된 주장이 궁금합니다.
미국과 이란의 전쟁 중 각자의 주장이 서로 상반되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2026년 3월 24일 현재 미국은 협상이 잘 되고 있다고 하지만 이란은 협상 따위는 없다라고 정반대의 메시지를 내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상반된 주장을 하는가? 우선 트럼프는 국내 여론과 국제 사회에서 자신이 이란을 강력하게 압박하고 있다는 이미지를 만들고 싶으며, 에너지 가격 폭등에 대한 완화 신호를 주려는 의도입니다. 반면 이란은 내부 강경파, 여론에 미국에 굴복하지 않는다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 판단됩니다. 나중에 그 의도가 등통나더라도 크게 신경쓰지 않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지도자들은 국내 지지층과 국제 여론을 상대로 각가 다른 메시지를 쓰는데 익숙하고, 당장 현실적 문제 해결이 중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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