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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다고가 로마와 본격 갈등이 일어나게된 배경이 무엇인가요
카르타고는 페니키아가 세운 식민국가로 본국보다도 더욱 발달한 국가였습니다. 카르타고는 지중해 중계무역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강력한 해상 세력을 형성했습니다. 또한 북아프리카, 이베리아 반도, 시칠리아 등지로 세력을 확대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로마의 세력 확장 과정에서 반드시 카르타고는 충돌해야만 하는 상대였습니다.로마와 카르타고의 포에니 전쟁의 결정적 요인은 시칠리아 쟁탈전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시칠리아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으로 카르타고와 로마 모두 이 지역의 통제를 원했습니다. 기원전 264년 메시니에서 발생한 내전과 관련하여 로마는 마메르티니를 지원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카르타고는 메시나의 지배권을 유지하고자 했고 이로 인해 로마와 카르타고의 충돌이 불가피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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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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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시기 이슬람에서 바그다드를 계획도시로 건설 배경이 무엇인가요
중세 바그다드는 티그리스 강변에 위치하여 교통과 무역에 매우 유리한 지역이었습니다. 따라서 바그다드는 문하와 상업 활동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특히 아바스 왕조의 칼리프 알 마수르에 의해 수도로 정해 대규모 도시 건설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페르시아식 원형 도시 구조를 채택하여 계획적으로 도시를 개발하였습니다. 이후 바그다드는 9세의 '지혜의 집'과 같은 학문 기관이 설립되어 세계 학자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또한 실크로드의 주요 경로로써 국제 무역의 중심지로 성장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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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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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한시기이후 요동지역이 공손도라는 인물이 장악한 배경이 무엇인가요
공손도는 공손연과 함께 현도군에 이주하여 살았는데, 태수 공손역의 아들 공손표가 요절하자 공손도이 어릴적 이름이 공순표였고 나이도 같아 아들처럼 여겨 성장을 지원하였습니다. 결국 공손역의 덕분에 공손도는 요동태수로 임명되었으며, 이후 중원의 혼란을 틈타서 독자적인 세력으로 성장하였습니다. 그의 세력은 주로 요동와 산둥반도 일대를 걸쳐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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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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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나라의 사마의가 고구려와 전쟁을 벌인 이유가 무엇인가요
사마의가 고구려와 전쟁을 벌인 이유는 요동 지역과 관련됩니다. 당시 고구려와 위나라는 공손씨 정권을 제거하기 위해 협력하였지만 공손씨가 멸망하고 난 후에는 요동 지역으로 고구려 확장을 견제하려 했습니다. 당시 고구려는 242년 서안평을 공격하여 요동 진출을 시도하자 위나라는 이를 위협으로 간주하였습니다. 그리고 사마의는 관구검을 통해 대대적인 보복 공격을 감행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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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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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때는 남녀결혼시 남자와여자쪽중 어디서 혼수를 장만했나요
고구려시대 결혼시 혼수로 신랑집에서 돼지고기와 술을 보내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이는 재물을 주고 받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혼수로는 수의를 준비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는 죽을 때까지 부부의 예를 다하자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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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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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라는 소설은 정말 실존한 내용인가요?
<삼국지연의>는 정사 <삼국지>를 바탕으로 하여 명나라 시기 나관중이 쓴 소설입니다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나 민담, 설화가 결합되었으며, 작각의 허구가 가미된 것입니다. 70%는 역사적 사실이지만 나머지 30%는 허구로 구성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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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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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서는 삼별초의 난에 대해 어떻게 평가했나요?
몽골의 지배에 대한 저항으로 전개한 삼별초의 항쟁에 대한 시각은 다양합니다. 우선 삼별초의 항쟁을 자주성의 의지로 평가받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정부와 몽골군에 대한 투쟁 의지가 고려인의 자주성과 민중 의지를 표현한 것이며, 민중 사회 내부에 고양되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있습니다. 또 다른 평가는 무신정권의 사병으로 무신정권의 붕괴에 따른 권력 유지 수단에 불과한 행위였다는 주장입니다. 이는 삼별초가 무신정권을 지탱하는 군사력으로 이용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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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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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성총관부는 어떠한 것인지 궁금합니다.
쌍성총관부는 1258년부터 1356년까지 몽골이 철령 이북 지역인 동북면에 설치한 통치 기구입니다. 쌍성총관부는 원나라 간섭기에 직접 통치하였으며, 고려를 견제하는 역할을 했습니다.이 지역은 조휘와 탁청이 몽골에 투항하면서 원의 직할령이 되었고, 그 후 조휘의 가문이 총관직을 세습하여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공민왕이 반원 자주 정책이 시행되면서 1356년 무력 정벌로 수복되면서 폐지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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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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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해서 나라가 없어져버린 나라가 있을까요?
과도한 부채로 소멸한 국간느 20세기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만 2001년 아르헨티나는 심각한 외채 문제로 인해 국가 부도가 선언되었고 이는 경제적 혼란을 초래되었습니다. 비록 국가 위기 사태로 가져왔지만 국가 소멸로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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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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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국호가 고려였다고 하는데요. 사실인지 알려주세요.
고구려가 '고려'로 국호를 사용한 것은 5세기 장수왕 때 개칭한 것으로 추정합니다. 이 시기 고구려는 국력을 강화하고, 수도를 평양을 천도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국가의 변화를 추진하였으며, 국호 변경도 그 일환으로 추진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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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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