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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의 두 통신사 중에서 김성일은 왜 일본에 대해 같이 간 신료와는 다른 의견을 나타내었나요?
1591년 통신사로 일본에서 돌아온 김성일은 선조의 풍신수길에 대한 인상을 묻튼 질문에 서인의 황윤길과는 다르게 "그의 눈은 쥐와 같아 마땅히 두려워할 위인이 못됩니다."라고 답변합니다. 이렇게 상반된 보고에 당시 재상 류성룡은 같은 동인인 김성일의 편을 들었으며, 이에 선조는 김성일의 보고를 채택하였되었습니다.같은 동인인 류성룡이 편전에서 김성일 편을 들었지만 보고가 끝난 후 김성일 따로 만나 묻길, "그대가 황윤길의 말과 고의로 다르게 말하는데, 후일 병화가 있다면 어떻게 하려고 하느냐?"는 질문에 김성일은 다음과 같은 말로 무마했다고 합니다. "나도 어찌 왜적이 침입하지 않을 것이라 단정하겠습니까? 다만, 온 나라가 불안에 휩싸일까봐 그런 것입니다."라고 언급했다고 합니다.나중에 김성일은 다시금 상소를 올렸는데, "오늘날 두려운 것은 섬나라 도적이 아니라 민심의 향배이니 민심을 잃으면 견고한 성과 무기가 있어도 아무 소용이 없다."라는 내용입니다.김성일의 정파적 대응 과정과 상소를 바탕으로 보면 김성일도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침략할 것으로 예상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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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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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 나타낼때 BC, AC, AD, CE 등 많던데?
BC는 'Before Christ’의 약자로,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기 전의 시기를 말합니다. 우리말로 기원전이라 합니다. 그리고 AD는 'Anno Domini’의 약자로, 라틴어로 '주님의 해’를 의미하며,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난 해 이후의 연도를 나타냅니다. 우리말로는 기원후라 합니다. CE는 'Common Era’의 약자로, '공통 시대’를 의미하며, AD와 동일한 시기를 나타내지만 종교적 중립성을 위해 사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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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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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해례본의 내용이 뭔가요??
훈민정음 해례본은 세종대왕을 보필하며 한글을 만들었던 집현전 학사들이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만든 원리와 사용법을 상세하게 설명해 둔 글입니다.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나라의 말이 중국말과 달라 한문 글자와는 서로 통하지 않으므로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글로)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이를 딱하게 여기어 새로 스물여덟 글자를 만드니, 사람들로 하여금 쉽게 익혀 날마다 쓰는 데 편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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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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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일에는 무슨 행사를 하나요???
현충일은 1956년 제정 당시에는 6.25 참전 용사들을 추모하기 위해 제정되었습니다. 그리고 전몰 장병과 순국 선열, 그리고 순직 공무원 등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순국선을 기리는 날로 확대하여 기리는 날입니다. 현충일 국가적 행사로 국가 보훈처 주관으로 대통령 등 주요 신사들이 참석하는 추모행사를 합니다. 그리고 각 지자체별 행사 및 문화 행사가 진행됩니다. 물론 북한도 이런 남한의 행사에 대해 관심을 가질 것으로 추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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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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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일은 언제 생겨날 기념일인지 궁금합니다
현충일은 처음 1956년 제정 당시에는 6.25 참전 용사들을 추모하기 위해 제정되었습니다. 그리고 이후 6.25 참전 용사 이외에도 전몰 장병과 순국 선열, 그리고 순직 공무원 등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이들을 기리는 날로 확대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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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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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전을 쓴 허균은 왜 광해군 시절에 능지처참을 당했나요?
홍길동전을 저술한 허균은 광해군 재위시 도승지로 개혁 정책을 지원합니다. 그러나 그는 1618년 능지처참으로 처형됩니다. 허균이 처형된 이유는 역모죄입니다. 허균은 '호민론', '유재론' 같은 글을 지어 서얼 차별 철폐를 주장하고, 민중 봉기를 경고한 진보적 인물었습니다. 이런 주장은 그가 서자와 불만 계층을 규합해 혁명을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이 소문이 나순이 나서 이이첨으로부터 의심을 받게되었습니다. 허균은 상소로 역모와 무관함을 밝혔지만 이이첨의 외소년인 세자빈이 아들을 낳지 못하고 허균의 딸이 세자의 후궁으로 입궐하면 이이첨의 공격은 더 험해졌습니다. 그리고 1618년 8월 10일 남대문에 "포악한 임금을 치러 하남 대장군 정아무개 곧 온다"라는 벽서가 붙었습니다. 그리고 8월 16일 허균이 심복 현응민의 소행으로 밝혀지면서 허균이 체포되고 8월 24일 능지처참이 되었습니다. 허균은 당파적 편견과 역모 협의로 처형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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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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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유럽에서 마녀사냥이 생긴 이유?
중세 유럽에서 마녀 사냥은 12세기부터 자행된 학살 행위입니다. 마녀 사냥은 재편 형식으로 벌어졌습니다. 특히 마녀 삿냥이 본격화한 배경은 14세기 흑사병의 유행으로 인한 사회 혼란과 불안, 16세기 종교 개혁과 종교 갈등 등으로 사회 불안 등의 문제를 마녀에서 그 원인을 찾으려면서 일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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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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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로마시대는 황금기라던데, 몰락한 이유가 뭔가요?
395년 황제 데오도시우세 황제가 사후 로마는 동서로 나뉘어 집니다. 그런데, 동로마는 1453년까지 1000년 이상 지속되지만 서로마는 476년 용병대장 오도아케르에 멸망합니다.서로마가 단명한 이유는 군사력이 약화입니다. 시민군을 대신해서 게르만 용병에 의존해야 했으며, 이는 로마를 위한 것이 아닌 개인적 이익을 우선시하였습니다. 게다가 게르만을 비롯해 이민족의 침입이 끊임없이 침입했습니다. 두번째로는 로마의 타락과 부패입니다. 로마 건국 초기의 강건한 시민 의식일 실종되었습니다. 게다가 전염병 확산, 납 중독 등이 로마인들을 정신적으로 쇠락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상공업 쇠퇴하고 노예의 공급이 중단되면서 자급자족적 콜로나투스가 확산되어 경제적으로 쇠퇴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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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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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신분제도가 오늘날에도 영향을 준게 있나요?
1894년 갑오개혁으로 신분제는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헌법상 평등권이 보장되기 때무문에 신분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사회든지 신분제가 없어도 빈부 격차, 권력 및 지위차 등에 띠라 계층이 존재합니다. 즉 신분제는 없었지만 계층 및 계급의 차별은 존재합니다. 그릭 우리 사회는 그 격차가 커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런 계층 및 계급 차별을 없애기 위해서는 복지 정책이 강화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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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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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미사변과 단발령을 이유로 일어난 1895년 의병이 해산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명성황후 시해(을미사변)과 단발령 시행에 대한 반발로 제천의 유인석, 춘천의 이소응 등이 의병을 일으켰습니다. 그런데, 의병은 오래가지 못하고 해산됩니다.그 이유는 아관파천 이후 단발령이 취소된 것도 있지만 고종의 해산 권고 조칙이 가장 큰 원인입니다. 즉 유생 의병장들은 임금의 명을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고종의 해산 권고 조칙은 곧 유교 이념을 따르는 행위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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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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